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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기

희생번트-허구연의 전보(4)

 

1980년, 허구연은 고려대학교 대학원 법학부에 적을 두고 있었다. 어느 날 느닷없이 나에게 퇴직원을 내밀었다. 나는 접어서 서랍에 넣어버렸다. 내가 더 이상 말이 없자 어쩔 수 없이 그는 자리로 돌아갔다. 회사 생활에 회의감이라기보다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일주일에 2,3일은 학교에 나가야하는 등 심적인 부담감을 갖지않았나 생각했다. 나도 그 당시에 대학원을 다녔고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막 수료했기에 허구연의 심정을 이해했다. 그는 81년 2월 '이사회 제도에 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고 야간에 틈을 내 서대문에 있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허구연의 친화력은 사내에 이미 정평이 났다. 상하간, 동료사이에, 심지어는 여사원들에게 인기짱이었다. 남자 사원의 도움을 청할 일이 있으면 비서실,텔렉스실,복사실에 근무하는 여사원들은 그를 찾았다. 누구에게나 도와주고 가려운 데를 긁어주었다. 야간에 여상을 다니는 사환이 둘 있었는데 마침 졸업식이 있었다. 허구연이 내 등을 떠밀었다. 가정형편이 좋지않은 처지를 고려하여 상위자인 나를 동원한 것이다. 나는 갈현동에 있는 학교를 찾아가 졸업을 축하해주었다. 그 때 흑백사진에서 그의 여린 마음과 자세를 생각한다.

 

본래 목소리가 소근소근해 화를 내거나 큰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고 듬직하게 툭툭 던지는 우스개 소리는 주위의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솥뚜껑 같은 큰 손으로 영어콘사이스를 넘기는 광경이나 얌전히 핀을 찝고 크립을 끼워가며 서류를 챙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몰래 웃음이 나왔다. 단정 섬세하고 치밀 꼼꼼했다. 글씨체를 보면 알수 있다. 눌러쓴 그의 글씨는 체구에 어울리지않게 깨알같았다. 수시로 전달하는 보고 자료나 메모는 흐트러짐이 없이 깔끔했다. 역시 운동을 한 사람이라 몸이 가볍고 행동은 민첩 재발랐다.

 

갈수록 여러 영업부서에서 허구연을 서로 빼가려고 눈독을 들였다. 입사할 때 그의 본질을 알았더라면 이미 그 때 영업에 배치되었을지 모른다. 모르긴 몰라도 운동을 했다는 선입견에 처음엔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그는 입사 2년 만에 스스로 면모를 일신시켰다. 내가 부장으로 승진된 81년 3월, 그는 시판영업 쪽을 택해 전배되었다.

 

 

83년, 시판영업 2과장 허구연은 회사 사보에 투고를 했다. 년초의 전사 목표관리 교육이 끝난 바로 직후다. 당시 회사는 재도약에 조직역량을 한데 모을 때였다.  '희생번트로 숨은 공헌을 하는 사람이...'라는 표제가 달린 글은 이렇다.

 

-구름으로 뒤덮혔던 하늘이 개어 햇살이 창틈으로 들어온다. 어둠 속의 빛은 적을수록 더 강한 가치를 보여준다. 2년 여의 어둠 후 그 빛을 맞기위해 우리는 지난 한해동안 정말 열심이었다. 기업의 존재가치가 이윤추구에 있다는 걸 알았으며 빛을 다시 맞이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드는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높은 업적을 올리기 위해서 각 단위별로 의사결정이 올바로 되어야 하고 모두가 참여의식을 갖고 창조적인 일을 하므로서 조직역량을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믿음과 자주성을 존중한다면 우리회사는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본사 영업과 공장의 생산 현장이 호흡을 함께 할 때 협동과 희생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홈런을 치는 장타자도 중요하지만 희생번트로 기여하는 사람이 늘어날 때 조직은 큰 힘을 발휘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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