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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기

통금-허구연의 전보(2)

 

허구연을 처음 만난 그 날이 내 입사 날이다. 나는 총무부의 서무과장으로 특채 입사였다. 총무부장이 겸직하는 새마을과가 따로 있었다. 그 시절엔 관공서든 기업이든 총무과장 대신 새마을과장으로 명패를 바꾸었다. 아무래도 상투 냄새가 풀풀나는 서무과는 회사에서 일부러 자리 하나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서무과는 나와 함께 남자 사원 두 명에 여사원 한 명이다. 우연이지만 서무과 네 사람 모두 고향이 서부경남으로 허구연,정동국 그리고 나는 진주이고 강인자는 함양이었다.

 

그는 6월 중순 산정호수호텔의 3박4일 관리자 승진 교육과정을 마무리한 다음 자리를 옮겨 한솥밥에 숟가락 젓가락까지 함께 들게 되었다. 사무실 레이아웃이 모두 전방을 보는 자리 배치라 전망을 가로막다시피 바로 앞에 앉아있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있노라면 육중한 오리궁둥이가 의자에 꽉차서 곧 터질것 만 같았다. 의자를 돌리면 나와 얼굴을 마주 보는데 그 때마다 철제 회전의자가 뒤뚱거리거나 삐걱댔다. 다른 사원과 달리 새 의자로 자주 갈아주었다.

 

 

그는 내가 입사하기 직전에 결혼을 해 한창 신혼이었다. 내가 과장이 된 얼마 후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집들이가 있었다. 서무과 뿐만 아니라 총무부 내 전 사원이 허구연의 수유리 신혼 집으로 몰려갔다. 그 시절의 직장의 풍속도는 지금과 사뭇 달라서 퇴근 후 무슨 '껀수' 만들기에 아이디어를 집중했고 무슨 '껀수' 만 있으면 시와 때 원근을 가리지않고 투합했다.

이 날 퇴근시간이 가까워오자 조금 서둘러 주위의 눈치를 봐가며 회사 문을 미리 슬슬 빠져나갔다. 그러나 충무로에서 수유리까지 밤길 행차로는 먼거리였다.  더욱이 12시 통금 시절이었다. 먼저 간 그는 역시 덩치에 어울리게 푸짐하게 음식을 준비해 기다리고 있었다. 가자마자 모든 걸 차질없이 먹고 마셨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선임자이기도 하거니와 나도 회사의 신참자였으므로 나는 나대로 이런저런 술을 가리지않고 권커니자커니 분위기를 잡아주었다. 정작 허구연은 술이 약했다. 누군가의 선창으로 분위기는 금방 달아올랐다.

 

항상 술이 끝을 낸다. 나는 인근 병원의 응급실로 실려가 머리에 박힌 유리조각을 핀센트로 하나하나 찝어 빼내고 몇 바늘을 꿰맸다. 십여 명이 어깨동무하고 넓은 방을 돌다가 신입사원인 한창진이 갑자기 나에게 뛰어들며 밀치는 바람에 내가 중심을 잃고 넘어지면서 자개로 만든 큰 체경의 유리 거울을 머리로 들이받아 그대로 박살을 내고 만 것이다. 와장창 하는 소라와 함께 금이 간 유리가 좌르르 내려앉는 그 순간 허구연을 포함 다들 혼비백산했다.

 

얼굴이 아니고 머리칼 밑이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치료를 끝내고 통금을 피해 간신히 집으로 돌아오는 차중에서 나는 입사 신고식이라 여기며 액땜으로 치부했다. 허구연을 볼 때마다 그날의 기억을 먼저 떠올린다. 순간의 해프닝, 긴 추억과 함께 신혼가구 손괴 또한 세월에 바랜 마음의 빚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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