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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기

(1) 56년 전 일기장

 

 

일기를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써온 건 아니다.

 

국민학교 시절의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일기가 있는가 하면 공책에 쓴 일기, '학원'이라는 잡지의 부록으로 딸려온 일기장 등. 중학생으로 호주머니 형편에 거금 털어 일부러 구입한 두툼하게 장정이 된 일기장, 대학노트 일기장 등등... 내용은 그렇다치고 수 십권의 일기장은 우선 겉모양이 그때그때 해마다 다르다.

 

나의 첫 일기장. '일긔장'이라고 겉장에 쓰여있다. 잉크를 찍어 펜으로 쓴 이 글씨는 할아버지의 필체다. '노트 부우크'라고 쓰인 글자도 보인다. 월 일과 요일은 한자인 걸로 보아 할아버지가 내 '일긔'를 지도한 흔적이다. 

 

 

 

여덟살. 국민학교, 그러니까 초등학교 2학년. 

단기 4288년이니 56년 전 일기장이다.  No.2라고 적혀있으니 분명히 No.1이 있었다.  아쉽게도 No.1은 남아있지 않다. 

 

 

 

 

-6月 16日 (木) 흐림

셈본 두시간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골목길에서 평이도 치고 앞길 언덕에서 미끄럼도 타고 놀았다.

 

평이는 팽이일 것이다.

 

-6月 20日 (月)  오전 개임 오후 비

학교에 갔다와서는 할아버지 타작하시는데 비짜리로 씨러 모우기도 하고 할아버지께서 일 잘한다고 칭찬을 받았다.

 

칭찬이 그렇게 좋았나보다.

 

-7月 4日 (月) 비

지낸밤부터 비가 많이 와서 물 걱정이 없어졌다. 동네 앞논마다 물이 꽉 차 있는대 방개가 많이 있기로 다른 아이들과 방개를 잡고 놀았다.

 

-7月 13日 (水)  맑음

학교에 갈때 비가 많이 와서 도랑물은 길로 넘고 논물은 두룸을 넘었다.

 

 

 

 

 

 

얼마나 쓰기 싫었으면 게으름으로 글씨가 흔들린다. 일기란 그렇다.

 

경남 진주.  진주 천전국민학교에서 배영국민학교로 전학을 가던 날.  망경동에서 수정동으로 이사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거제도로 떠나시는 광경이 연필로 눌러쓴 글씨로 이 '일긔장'에 남아있다. 

어렴풋한 기억이 울퉁불퉁한 글자 글자에서 새삼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지난 해 어느 이른 봄날.  친구들이 마당에서 자기 이름이 등장하는 내 '일긔장'을 보고있다. 

 

 

글쎄, 앞으로 틈나는대로 그때 그 시절의 일기를 여기에 한번 올려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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