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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일기

귀촌일기- 경로당 시즌 오픈

 

농번기에는 노인들이 더 바쁘다.  집안에서 때 맞춰 도와야 할 일이 정해져 있다.  이것

저것 보이는 게 다 일이다. 그래서 경로당은 여름과 가을에 걸쳐 너댓달은 아예 문을

닫는다.

 

비로소 오늘 경로당 문을 열었다. 동지를 앞두고 이때 쯤이면 시즌오픈이다. 마을회관의

아랫층이 경로당이다. 4십 여명의 회원이 등록되어 있으나 '죽고 아프고 해서 출석하는

회원은 3십 여명으로' 보면 된다는 총무님 말씀이다. 사발통문에 절반 정도 모였다. 

 

 

 

 

경로회장님이 인삿말을 시작한다. 

" 7년 째 회장, 총무 허구 있는데 봉사정신 없으머 못해유. 회장, 총무가 일일이 전화 허면 

와서 먹어줘야 허는디...  나오세유.  운동 삼아 점심이라두 같이 하구... 금년 봄에까정

1박2일 남해안으루 갔다오긴 했는디... 이젠 안 될거구만. 기동력이 약해 관광도 못가유. 

국가 예산이 115만원으로 줄고, 도에서 나오는 복지예산도 90만원에서 70만원으로 줄었시유.

연평도 전쟁준비로 무기 사오고, 군대가 24개월로 되면 나라 재정이 갈수록 팍팍해질 거

아니겠슈.  관에서 혜택 받기 점점 어려워져유.  5명 이하면 폐문 되어 지원이 없슈. 

우리 경로당은 참석, 운영, 태도에서 우수하고,  지난해 여름에는 바다살리기 활동도 잘

했시유. 젊은 사람이 없어 내가 경운기를 끌고 다녔잖유."

회장은 뒤를 돌아서 새삼 표창패를 가리킨다.

 

 

 

방바닥이 유난히 따뜻했다.  여름에 태양열 난방공사를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군내에서

우수마을로 선정되어 마을 숙원사업비 명목으로 상금을 받았는데 경로당 태양열 공사에

충당했다.  2천만원 포상금에 마을에서 5백만원 자부담을 했다. 앞면 벽에 붙어있는 교부

증서가 크게 눈에 띈다. 난방공사에 거금을 몽땅 내놓은 이장의 결정과 젊은 사람들의

동의에 경로회장은 감사의 뜻을 표했다. 

 

 

"얼마 전이유.  청양에서 경로당 우수 성공사례 발표회가 있었슈. 대한노인회 충남 연합회

주최로 5백명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 경로당이 3등 했슈. 충남 16개군에 경로당이 천여개

인데 그 중 2백개에서 예선을 거치고...  이해성, 단합, 솔선수범 부락으로 태안군 지회

61개 경로당 중에서 최고 우수 경로당으로 선정돼 대표로 참석했시유.  

다들 교장,면장 하다가 온 사람들 잔뜩인데 그런 무대에 지금까지 올라가본 적이 없었슈. 

난 실력으론 최하인데도 제치고 나를 뽑았슈. 돌아다니다가 널러가는 소리 허는데 진실성,

긍정적인 면에서 나 밖에 없다고들 말했슈. 상금이 10만원이더구머. 지회장이 태안 자부심

세워줬다구 나중에 20만원을 별도로 내놓았슈.

다른 덴 회장을 하겠다고 운동을 하는데 여긴 하겠다는 사람이 없슈. 지회서두 더 해라

소리만 허구... 지회 모임에 빠져본 적이 없슈. 부락에 도움 되는 일이면 해야겄지유."

 

"힘들어 죽겠시유. 나는 이제 벗어나면 좋겠슈."

옆에 서있던 총무가 갑자기 손사래를 치며 끼어들었다.  그러자 회원들이 동시다발로

한마디씩 던졌다.  벌떼같은 반대론에 총무님은 속수무책.  다시 입도 벙긋 못하고 유임

쪽으로 흘러가고 말았다.

 

경로당 총회는 내년 3월이다.  농한기 경로당 시즌오픈에 회장으로서 구구절절 할 말이

많다.  오랜 만에 회원 앞에 선 회장님의 경과보고는 길고 길었다.  이미 알고있는 내용인

데도 성의를 다해 새삼스레 알리고 주지시킨다.  회장의 인삿말에서 지난 일년의 흐름과

세상사를 바라보는 시각과 정서가 속속들이 와닿았다.

 

 

여자들은 주방 앞 쪽에 진을 쳤다. 몇몇 남자 회원들은 체력단련실이 있는 안쪽에서 시종

화투짝에 매달린다. 음식 준비와 설거지는 여자들 몫이다. 가만히 듣고있자하니 경로당

와서 영감들 뒤치닥거리가 약간 불만인 듯.  이를 눈치 채고 남자들도 그다지 엉덩이가

무겁지않다.

 

 

 

 

 

해마다 봄에 치르는 경로의 날 행사완 달리 부산스럽지 않았다.  마을 부녀회나 청년회

젊은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소주나 맥주 몇 박스에 과일 상자들을 보내왔다.

젊은 사람들이 와야 노래방 시설을 가동할텐데 그것마저 안된다. 부녀회에서 김장김치를

가져와 갓 삶아낸 돼지고기 수육에 김치보쌈이 안성맞춤이었다.  점심은 갈치조림과 김,

미역국, 오징어 젓갈, 배추김치로 조촐하다.

 

도내생활 8년동안 빠지지않았고 빠질 수 없는 하루 일과였다.

 

돌아오는 길에 바로 버갯속 영감 댁으로 갔다.  서울서 친구가 구해 보내준 새해 일력을

영감에게 전달했다.  그동안 매년 다섯 부에서 올핸 두 부로 줄었다. 

내가 여기에 처음 내려올 때만 하더라도 경로당을 오가며 수시로 우리집을 들렸던 경로당

초대 회장이었다. 3년이 넘은 와병이라 요즈음 말귀를 알아듣기 힘들다.  그러나 고맙다는

말 만은 오늘 또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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