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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갯속 영감 교유기(交遊記)

귀촌일기- (12) 자유인

자유인                                                                                                                 (12회)

 

  그야말로 화창했다. 봄기운이 아침부터 나긋나긋 온몸에 부딪쳤다. 나는 겨우내 닫혀있었던 문을 모두 활짝 열어젖혔다. 모처럼 용상에 앉아 구도 항을 바라보았다. 소나무로 뒤덮인 당섬이 처녀 젖꼭지처럼 봉긋했다. 구도 항 사이로 오밀조밀 고깃배들이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얼핏 버갯속 영감이 어른거렸다. 저만치 언덕바지 마루턱 이었다. 우리 집 뒤에서 서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경사가 가팔랐다. 그곳은 버갯속 영감뿐만 아니라 마을 노인들이 오가다 숨을 돌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바로 옆에는 버갯속 영감의 할머니 효행비(孝行碑)가 있었다.

  영감은 둔덕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쓸데없이 힘 자랑 말어. 뉘가 알아주긴 하간?”

  가끔 영감이 한 말이었다. 영감은 힘을 뺄 때는 빼야 쓸 때 쓴다고 말했다. 크게 힘을 쓸 일도 없고 힘을 뺄 일도 없어 나는 예사로 들었다. 지금 그 이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둔덕 아래는 버갯속 영감의 마늘 밭이다. 작년 가을에 심어 해를 넘긴 마늘이 물이 올라 하루가 달랐다. 두 어 달 후 태안(泰安) 육쪽 마늘 축제가 기다리고 있다. 마늘 축제는 태안과 서산(瑞山)이 한 주일 걸러 다른 나팔을 불었다. 서산이 선수를 쳐서 육쪽 마늘을 지리적 표시등록을 하고 특산물 축제로 먼저 애드벌룬을 띄우는 바람에 적이 태안이 자존심을 구겼다. 역사적으로 태안군과 서산군이 합군(合郡)과 분군(分郡)을 거듭하는 과정에 육쪽 마늘의 족보가 애매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육쪽 마늘은 태안반도의 앞에 있는 가의도(賈誼島)가 원산지라는 말을 언젠가 들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나도 육쪽 마늘 하면 꼭 태안을 앞에 붙여 ‘태안 육쪽 마늘’이 어쩌구 저쩌구 하게 되었다.


  영감도 멀리서 나를 보았다. 어서 오라는 시늉으로 영감은 연신 두 손을 흔들었다. 내가 다가가자 영감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내 쬐끔 쉬고 있네그려.”

  내 손에는 급히 끓인 커피 두 잔이 들려있었다. 엊그제가 춘분이라 바깥은 집에서 보는 햇살과 달리 코끝이 설렁했다.

  “보리누름에 중늙은이 얼어 죽는다 카데예.”

  “허허, 또 먹어라구? 집에서 막 먹고 왔는디.”

  버갯속 영감은 함빡 웃음을 머금었다. 보리누름까지 들먹인 내 인사는 여지없이 뭉개졌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가 영감 눈에 먼저 띄었다.

  “어허, 나 오줌 매려워서 안된다니께.”

  평소 다른 음료는 퇴짜를 놓기 일쑤였다. 권했던 손이 부끄러워 놔두면 주는 정을 못 이겨 슬며시 마실 때도 있긴 있었다. 그러나 커피는 사양한 적이 없었다.


  버갯속 영감은 전립선이 부실했다. 우리 집 거실에서 영감이 앉았던 자리가 얼룩져있을 때가 한두 번 있었다. 거실 바닥은 한지 장판에다 콩댐을 했기 때문에 물 기운이 가면 어김없이 표가 났다. 영감도 그걸 아는지 여간해서는 집 안에 들어올 생각을 안 했다.

  어쩔 수 없이 거실에 들어오더라도 현관 입구 돗자리에 앉는 걸 고집했다. 바로 그 자리가 영감의 고정석이 되었다. 어떨 때는 신발이 더럽다는 핑계로 현관 바닥에 주저앉았다. 가끔 영감의 바지자락에서 지린내가 났다. 바로 고향 표 냄새였다.

  “허허, 서울에 한번 가볼라구 허는디... 오줌 매려운 거 고칠라구...”

  영감은 은근슬쩍 얼버무렸다.

  “나이 들모 다 있다카던데... 뭘 그걸 가지고예.”

  이야기에 열중하던 영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줌이 급했다. 갑자기 일어서는 바람에 내가 머쓱했다. 어언 나도 이런 모습에 동화가 되었다. 영감은 우리 집에 실내 화장실이 두 개나 있는데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영감의 성미가 별났다.

  영감은 현관을 나서마자 불이 낳게 어디론가 걸어갔다. 마당을 가로질러 축대 끄트머리에 우뚝 섰다. 간사지의 원논을 바라보며 스스럼없이 해우(解憂)를 했다. 간혹 관중이 있어도 개의하는 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잠시 둘러보거나 그나마 몇 걸음 거리를 두는 건 최소한의 예의로 보였다.

  나는 버갯속 영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영감이 누리는 무아의 경지는 칠십 육년이라는 세월이 받치고 있었다. 사방팔방이 영감의 해우소(解憂所)였다. 거침없고 당당했다. 영감이야말로 그럴 자격이 있었다. 우리 시대의 마지막 자유인이라고 나는 일찌감치 도장을 찍었다.


   버갯속 영감과 나는 마늘 밭 둔덕에 아무렇게나 퍼질어 앉았다. 나란히 앉아 마시는 커피가 오늘따라 제격이었다. 엷게 끼었던 아침 안개는 퍼지는 햇살에 자취를 감추었다. 옆에는 사시장철 푸른 소나무가 물이 올라 자태를 뽐냈다. 팔봉산 능선이 길었다. 우람한 바위들도 겨우내 참았던 허울을 벗어 던졌다. 밭이랑에는 살랑살랑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땅 냄새와 커피 향이 번갈아 코끝에 어우러졌다. 아 아, 이럴 때도 있구나하는 느긋함이 밀려와 몸을 감쌌다. 한 쌍의 갈매기가 날개 짓을 했다. 버갯속 영감과 나는 봄 봄 봄, 봄에 놀았다.


  “요기가 내 할무니 효행비일세.”

  버갯속 영감이 정적을 깼다. 영감은 바로 옆 비석을 가리켰다.


  ‘孝婦忠州池氏之碑(효부충주지씨지비)’


  사십 여 년 전에 태안 향교에서 발의하여 서산 군수가 세운 비였다. 군수 이름이 김 형중. 종친에다 항렬이 나하고 같았다. 뒷면에 새긴 효행기는 한문으로 되어있는데 한글로 번역한 비를 나지막하게 그 옆에다 몇 년 전에 따로 세웠다.

  “태안읍지에 나와있데예.”

  버갯속 영감이 준 ‘태안읍지’에서 보았다. 효행비 중에 열녀비 란에 내용이  자세히 기록이 되어 있었다.

  “요새, 효(孝)가 있남?”

  “예?”

  “살아서 해야지... 죽으먼 나무토막이여...”

  영감은 알듯 말듯 툭툭 몇 마디 던졌다.

  “그렇지예. 비석이 무신 소용입니꺼.”

  나는 엉거주춤 거들었다.

  “..............”

  영감은 입맛을 다셨다. 호주머니를 뒤져 담배 갑을 꺼냈다. 천천히 담배개비에 불을 붙였다.

  “저도 효가 뭔지 잘 모르겠십니더.”

  “딴 거이 아니여. 마음이 효여.”

  “그렇네예.”

  “그려. 지 맘이여.”

  영감이 내뿜는 담배연기에 팔봉산이 잠시 가렸다.

  “모친은 건강하신감?”

  “워낙 강하신 분이라...”

  “살아생전이여. 하루가 다른 기 나이여. 그려.”

  나는 갑자기 허전했다.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따라 영감의 마음 한구석에 끼어있는 알갱이를 헤아리며 비석을 돌아 다시 읽어보았다. 


  ‘요즈음 세상에 윤리와 강상이 땅에 떨어져 백 명 중 한사람도 효하는 사람이 없는 시기에 남다른 효행이야말로 묘연하고 드문 일이다...

  시부모님의 6년 거듭된 초상에 묘를 살핌에 있어 무릎 꿇었더니 땅에 풀 이 마르고...

  겨울 추운 계절 산짐승이 눈을 쓸어 길을 인도 하는 특이한 일은 효부의 효심이 하늘에 닿아 감응한 소치로다.’


  영감은 혼자 앉아있었다. 서두르는 기미가 없었다. 생각이 나면 앉은 자리에서 손을 뻗쳐 잡풀을 뽑아냈다. 그 일이 전부였다. 오가는 걸음에 영감은 오물을 줍거나 잡초를 뽑아 비석 주위는 늘 깨끗했다. 마음이 바로 효라는 말을 몸소 실천이라도 하듯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나는 버갯속 영감의 오늘 하루가 궁금했다. 이런 날도 있나 할 정도로 영감은 느긋했다.

  

  “요거 봐. 요건 약쑥이 아닐세.”

  영감이 큰소리로 말했다. 영감은 바로 앞에 막 돋아나는 어린 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영감은 약쑥인지 아닌지 이내 알아보았다. 익모초니 쑥이니 이따금 설명을 들어도 그 때뿐 나는 구별이 되지 않았다.

  “약으로 쓰모 약쑥 아입니꺼?”

  “허허, 약쑥이 따로 있슈.”

  내가 신기해하자 영감의 말투는 가벼웠다.

  “잘 보머 알어. 내가 가르쳐 줄텐게.”

 

  나는 어릴 때 위장이 안 좋았다. 민간요법으로 한동안 쑥을 즙을 내서 먹고 오랫동안 뜸을 뜨기도 했다. 쑥물은 시푸르죽죽한 빛깔에 씁쓸 덜덜했다. 매일 아침 찧어주는 사람의 성의가 아니면 좀체 친해지기 어려웠다. 그러나 나중에는 달라졌다.

  쑥뜸도 간단치 않았다. 말린 약쑥 이파리를 손바닥으로 비비면 보드라운 솜처럼 되었다. 대추씨 크기로 뭉쳐내서 처방대로 손등이나 손목 근처에 살짝 붙였다. 불을 붙여둔 향 끝을 조심스럽게 갖다 대면 불기운이 이어져 조용히 타 내려갔다. 살갗에 다다른 불기운은 마침내 찌지직하는 소리를 냈다. 연비하듯 처음에는 참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웠다. 그러나 횟수를 거듭할수록 시원했다. 내 손목에는 몇 년 전까지 쑥뜸 흔적이 남아있었다.

  나는 쑥의 효과를 보았다. 쑥 이야기를 들으니 어딘가 숨어있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갱변가 바람에 요기 약쑥이 좋슈. 이전에는 말이여... 쑥이 에지간이 많았는디... 요지막엔 귀혀.”

  영감은 푸념을 했다. 쑥 이야기에 빠져 영감의 얼굴은 새삼 화색이 돌았다.

  “요새사람들 말이여. 익모초, 약쑥이 뭔지 아남. 다 약이고 돈인디.”

  “맞십니더예.”

  “맨날 마늘 파 생강, 마늘 파 생강, 이거여.”

  “허기사 바다 일에다 농사가 보통 입니꺼. 짬이나 있겠십니꺼?”

  “기냥 버리는 기 너무 많어. 머시 귀한 지도 몰러. 쯔쯔쯔.”

  “.............”

  “약쑥 하나두 지대루 못 챙긴다니께. 어이구, 풀약(제초제)에다 예초기까지 갖다대구선 후리니 집에 쓸 것두 없슈. 거 참.”

  버갯속 영감은 못마땅했다. 

  “조오기 너머 고파도(古波島) 말이여. 고기에두 약쑥이 좋은디, 사람들이 워찌 알구 와서는 뿌리째 다 파가버렸슈. 약쑥이 씨가 말렀다니께... 허허.”

  영감은 허탈해 했다. 나는 전적으로 동감이었다.

  “참말로 그런 기 문제라예. 우짜다 텔레비에 한번 나왔다캄 그길로 우우 몰려가서 완전히 뽕을 빼버링께네예.”

  소문이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사람의 손길 발길이 겁났다. 조상대대로 내려온 생활 유산이 그 길로 끝장을 보았다.

  “그려. 선전을 허질 말던지. 단속을 지대로 허던지.”

  “단속한다꼬 될 문제도 아니고예, 교육입니더. 누군가가 가르치야지예.”

  “허허, 고건 맞어.”

  “무얼 가르치야 할 지도 모르고, 뭘 배워얄 지도 모르고...”

  “워찌된 시상인겨. 지 멋대로여. 배워야 될 넘들이 선생한테 달라드는 시상이니... 어이구.”

  “작년에 주신 거, 잘 썼습니더.”

  나는 말머리를 돌렸다. 영감이 작년에 준 약쑥에 대해 새삼스레 인사를 했다.

  “그려, 버갠 만들었남?”

  “..............”

  실은 베개 속을 만들지 못했다. 내 대답이 시원하지 않자 영감은 실망한 눈치였다.

  “잠이 잘 와. 올핸 꼭 한 번 맨들어 보라구잉.”


  작년에 영감이 가져다준 약쑥은 두 다발이었다. 나에게 준 첫 선물이기도 하거니와 이로 인해 ‘버갯속 영감’이 되었다. 한 다발은 서울에 계시는 어머니 방에 묶음채로 놓아 드리고 나머지 한 다발은 나무상자에 담아 도내의 큰 방 윗목에 놓아두었다.

  약쑥 냄새가 온 집안에 퍼졌다. 처음 오는 사람들이 쑥 냄새를 먼저 알아본다. 현관을 들어서면 약쑥이 첫 인사를 하는 것 같다. 가끔 뒤집어주면 쑥 냄새가 다시 피어났다.

 

  “약쑥은 말이여... 오월 단오(端午) 때 꺾는디, 이슬을 맞아야 허거든.”

  버갯속 영감의 약쑥 강의는 계속되었다.

  “태안 약쑥이 좋다니께. 근디 아무거나 다 약쑥이 아니여... 지대로 꺾어야

혀. 단오 날 오시(午時)가 제일 효력이 좋다는 얘긴디... 향도 그때가 좋구... 허허, 역부러 그렇키까지야 할 건 없구.”

  “근디 약쑥은 말이여, 줄거리에 흰털이 보송보송 나 있슈. 눈으로 놓고 봐야 알어.”

  “약쑥은 햇빛을 보먼 안된다니께. 약쑥 냄새가 다 달아나. 그늘에서 말려야 혀. 꿰달아매 말리머 약쑥 냄새가 그대루 나서 좋구. 쑥 이파릴 말이여, 하나하나 따서 고걸 버개 속에 넣는 거여.”

  흥이 난 영감은 약쑥 이야기가 길었다. 요새 사람, 도시 사람 모두를 싸잡아 내지른 다음이라 말투는 한결 누그러졌다. 

  어느 곳이든 약쑥 이야기 뒤에는 꼭 해풍이 따라다녔다. 버갯속 영감도 ‘갱변가 바람’을 여러 번 들먹였다. 강화도니 백령도 약쑥을 들은 적이 있지만 약쑥의 수확은 단오 즈음이라는 건 오늘 처음 알았다.


  팔봉산 능선이 바다로 내려왔다. 썰물이 빠질 대로 빠져서 개펄이 춘 삼월의 햇살 아래 시원하게 드러났다. 이른 아침에 바다에 나갔던 아낙네들이 어촌계 작업을 끝내고 삼삼오오 지나갔다. 하나같이 노란 장화에 눈만 빠끔히 어도(漁島) 어촌계 펄렁 모자를 눌러썼다. 오늘이 사리에 일곱물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몰라도 다들 희희낙락 목소리에 윤기가 흘렀다. 발걸음이 잰 걸로 보아 오늘 수입은 두말없이 짭짤했겠다.

 

  “그 때 말이여, 한티 감세. 내, 약쑥이 워디 있는 질 아니께.”

  그 때란 영감이 말한 단오였다. 버갯속 영감은 주먹 쥔 손을 아래위로 흔들며 약속을 했다.

  “고맙십니더. 올핸 ‘버갯속’을 꼭 한번 맨들어 봐야지예.”

  아침 이슬이 방울방울 달린 약쑥 이파리가 벌써 눈에 어른거렸다. 오월 단오라면 양력으로 유월 중순쯤이니 아직 석 달이 남았다.

  “시상살이에는 돈으루 안 되는 거이 많슈. 시굴사는 재미가 별거이 있깐? 허허.”

  영감은 나를 쳐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럼예.”

  나도 맞장구를 쳤다.

  “모르머 배우구, 아는 건 가르치구...”

  버갯속 영감의 얼굴에는 흐뭇함이 번져났다. 다짐하듯 영감은 한 번 더 못을 박았다.

  “그려. 시굴 살먼 말이여... 약쑥 꺾는 것, 안해보머 몰러. 내가 지대로 가르쳐 줌쎄잉.”


                                                                                                                                                  계속 연재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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