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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갯속 영감 교유기(交遊記)

귀촌일기- (8)임자

임자 

                                                                                                                  (8회)

  “나, 책 몇 권 가져왔슈.”

  버갯속 영감은 천천히 보자기를 풀었다.

  “내가 모아둔 건디... 이제사 임잘 찾았네그려 잉.” 

  ‘泰安郡誌(태안군지)’, ‘태안읍지’, ‘生活漢字(생활한자)’, ‘사자소학’, ‘家庭儀禮(가정의례)’, ‘家禮百科(가례백과)’, ‘예절일기’, ‘소성의 향기’, ‘마금리지’, ‘시목리지’, ‘금남군충무공 정충신’, ‘진솔한 삶의 흔적’ 등 열두 권이나 되는 책이 쏟아져 나왔다.

  “이 많은 책을 제께예.”

  “허허, 줄 사람이 없다니께.”

  “............”

  “보고 배라구 주는 기여. 안 배먼 안주어.”

  “배우고도 남겠습니더.”

  “글짜를 알어야 대화가 되는 기여.”

  나는 버갯속 영감의 뜻을 짐작했다.

  “농사다, 뭐다, 시간이나 있겠십니꺼?”

  “씨가 안 멕혀. 사람은 책을 가차이 혀야 혀.”

  “전부 새거네예.”

  “넘에게 주는 책은 말이여. 깨끗혀야 허는 벱이여. 드문드문 역부러 모았슈.”

  향교에서 펴낸 단행본이거나 군청 직원이나 친지로부터 모아두었던 책들이었다. 시목(枾木)마을이 만든 ‘시목리지’는 누가 가지고 있는 걸 막무가내로 빼앗았다고 영감은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버갯속 영감은 나름대로 생각하는 순서에 따라 책을 가지런히 쌓았다. 영감의 표정과 손놀림은 진지했다. 책을 하나하나 소개할 태세였다.

  영감은 먼저 ‘家庭儀禮(가정의례)’를 손에 들었다. 앞 쪽 목차를 펴더니 손가락으로 꾹꾹 짚어가며 책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영감 옆에 바싹 다가앉았다.

  예절부분이 나오자 영감은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공수법(拱手法)과 읍례법(揖禮法)에 대해 시범을 보였다. 나로선 처음 들어보는 용어라 생소했다. 영감은 태안향교의 대의원과 장의(掌議)를 지냈다. 그리고 석전(釋奠)에서 아헌관(亞獻官)을 한 어른이었다. 영감은 전통 예법을 하나하나 설명해 나갔다. 잘못 전해지고 있는 부분을 지적하기도 하고 경상도와 충청도의 차이까지 비교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버갯속 영감은 앉아서 설명하다 갑갑했던지 다시 일어났다.

  “허리는 굽혀서... 공수한 손을 말이여... 바닥에 짚으머... 요기 계수배(稽手拜)라는 거여.”

  자세를 이리저리 고쳐가며 나에게 보여주었다.

  “한번 혀 봐.”

  “.............”

  “아니, 한번 혀 보라니께. 안 혀 보머 몰러.”

  웃고만 있는 나더러 영감은 정색을 하며 채근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엉거주춤 일어섰다.

  “게피스럽다 생각말구...”

  어정쩡한 내 태도가 못마땅한듯 영감은 단호하게 한마디를 더했다. 나는 영감이 시키는 대로 멋쩍게 따라 해보았다. 마주 잡은 손의 위치가 제대로 될 때까지 바로 잡아주었다.

  “팔굼치는 바닥에 붙이구... 허허, 이망을 갖다대라니께. 헐라면 지대로 혀 야지.”

  영감은 섰다, 앉았다, 왔다, 갔다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가르쳐주려는 열의가 영감의 몸 전체에서 넘쳐났다. 나는 도리 없이 귀를 세우고 몸으로 부딪쳤다. 어색한 기분은 어느새 사라졌다. 나는 스스로 옷매무새를 고쳐가며 두 번 세 번 복습을 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니었다. 평생을 젖어온 영감의 눈에 찰리가 없었다. 언제 다가왔는지 집 사람이 옆에 서서 영감의 강의를 경청하고 있었다.

  “허허, 이 사람 보게나. 왼손을 위로 끄댕기라니께.”

  영감은 가차 없이 주의를 환기시켰다. 마누라도 옆에 있는데 이 사람 영 쌍 놈이군 하는 말이 나올 가봐 조마조마했다.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말로 슬쩍 넘어가 주었다.

  “동쪽은 해가 뜨니께 양(陽)이구, 서쪽으루 해가 지니께 음(陰)인겨. 남잔 양인께 동(東)이구..., 요게 남좌여우(男左女右)라는 거여.”

  버갯속 영감의 설명을 들어도 알듯 말듯 했다. 인사하는 예절 하나도 이 정도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는 제법 불려다녔시유...”

  영감은 갑자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근디, 원 시상에... 인젠 말이여, 당최 갈켜 달래는 넘도 없구, 알라는 넘도 없슈. 시상이 워디로 가는지... 다 똑똑한 넘들 뿐이라니께.”

  영감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예의가 조끔 힘들긴 힘드네예.”

  영감의 얼굴을 쳐다보며 슬그머니 건너뛰었다.

  “힘 들다구. 알면 편하다구잉.”

  그러나 역시 예의는 피곤했다. 버갯속 영감과 나는 마주보며 이미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씩 마셨다.

 

  “허허, 다딤이도 있구, 뒤지도 있네.”

  영감은 거실 창가에 놓여있는 다듬잇돌과 뒤주를 보았다. 구십 년 전쯤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제금 나올 때 세간이었다. 태엽이 두어 번 터진 적은 있으나 아직도 잘 가는 세이코 괘종시계와 함께 이사를 할 때마다 먼저 챙겼다. 서울의 아파트에 두기보다 시골이 어울린다싶어 며칠 전에 체이(키)와 체, 됫박도 모두 가져왔다.

  “허, 희전 재물이구머.”

  “이제사 자리를 찾은갑십니더.”

  “옛 걸 몰러. 간수해 가머 쓸 줄도 모르구. 어이구.”

  영감은 답답한 심정을 한바탕 쏟아냈다.

  “다 버렸지예. 그래도 조상이 쓰던 물건인데... 멋도 모르고.”

  얼마 전까지 절구통도 있었다. 돌을 깎아 만든 것으로 메주 방아도 찧고 바짝 마른 북어도 서너 번 도곳대(절구공이) 맛을 보고 나오면 부드러워졌다. 이사를 할 때마다 용케 따라다녔으나 아파트로 오면서 결국 놓치고 말았다. 도내에 와서 보니 그 자리가 허전하다.

  “철따구니 없단 말은 안 들어야 허는 디... 세상 돌아가는 거이 정말... 쯔쯔쯔.”

  “..............”

  “모든 거이 때가 있는디... 지대로 배워야 혀. 뭐시든 새깜맞다 생각하먼 못 배우는 거여.” 

  “맞는 말씀입니더.”

  “예(禮)란 말이여... 글자로 보머 보일 시(示)와 풍성할 풍(豊)자가 합쳐진 건디... 시는 제단이고 풍은 제기(祭器)에 두 꿰미의 옥(玉)이 담긴 모양이라니께... 요게 사람이 지키야 할 도리로 내려온 거유.”

  버갯속 영감은 끝까지 이론과 실제의 구색을 맞추었다. 영감은 다듬잇돌과 뒤주를 보며 예를 생각하고 예를 생각하며 사람의 도리를 엮어가고 있었다.

  “제가 본데가 없어서예.”

  나는 손으로 이마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도리를 모르머 길이 안 뵈는 벱이여.”

  “오데다가 정신을 팔고 사는 지예”

  “사람은 말이여. 아무러치나 사는 거이 아니여. 허허.”

  “지상가상 없이 산거지예.”

  “요거 봐. 질서가 있구, 순서가 있슈. 지킬 건 지키구. 데번데번 살지 말라 요거여.”

  영감은 손으로 내 무릎을 두어 번 두드리며 말했다. 영감의 입가에는 특유의 함박웃음이 피워 올랐다. 버갯속 영감은 제자 한 사람을 둔 흐뭇함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저러나 오늘 나는 육십이 다 된 나이에 제대로 절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버갯속 영감이 준 책 들을 서재 정면 가운데 꽂아두었다. 내 나름의 예의였다. 서재에는 삼천 권 쯤 되는 책들이 있다. 학창시절부터 사십 여 년 동안 모아진 책이다. 아파트에 쌓아둘 수가 없어 최근 몇 년간은 후배의 시골집에 보내 보관해왔다. 책들을 도로 가져와야겠다는 생각이 서둘러 집을 짓게 된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컨테이너를 특별히 제작해서 사랑방 겸 서재로 쓰고 있다. 얼핏 보면 무슨 창고처럼 보인다.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오솔재(五率齋)’라 써 붙여서 한번 멋을 부려볼 가 생각하고 있다.

  대학 다닐 때 곤양(昆陽) 다솔사(多率寺)에서 두어 달을 보낸 적이 있었다. 다솔사로 올라가는 길은 온통 죽죽 뻗은 소나무였다. 일주문이 없는 다솔사이기에 소나무들이 산문 같기도 하고 절을 호위하는 군사처럼 보이기도 했다. 도내를 울울창창 둘러선 해송을 보니 다솔사가 생각났다. 집 앞으로 난 소나무 오솔길이 다솔사 가는 길과 닮았다. 어느날 ‘오솔’이 내 필명이 되었다.

 

 

  “허허, 이 양반 보게. 원제 이렇기 모았다나?”

  어느 날 서재에 들어온 영감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모다 읽기나 했남?”

  “다 읽기는예.”

  영감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눈길이 가는 책 몇 권을 차례로 서가에서 꺼내보았다.

  “허허, 요기다 두었구마.”

  마침내 당신이 준 책 들이 한 가운데 있는 걸 알아보았다. 스무 권 가량 되는 부피여서 자리를 꽤 차지했다. 반가운 듯 새삼 어루만져 보았다.

  영감은 갑자기 책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나갔다. 손길을 멈추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실눈을 깜빡거렸다.

  “‘태안복군십년사’ 말이여, 내가 안 주었던겨?”

  “.............”

  “요긴 없네그려.”

  “엉뚱한 사람 준 거 아입니꺼?”

  “허허, 이 동넨 줄 사람 없다니께. 던져 놓구 보남?”

  “.............”

  “허, 근디 이상허이. 내 갈량으론... 집에 가 기록을 봄세.”

  “예?”

  영감은 도서대장이 있었다. 책을 주거나 받으면 일일이 기록을 했다. 영감이 거처하는 방에 찬장인지 책장인지 구분이 안 되는 오래된 책장이 있다.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는 고물딱지 책장에는 이런저런 책들이 정갈하게 꽂혀있었다.

  “내 한번 구해봄세...”

  버갯속 영감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

  “허, 근디 오늘 내가 총놓고 기냥 왔네그려. ‘예절서’허구 ‘서산 문화’말이여. 어저끼 군 서기한테서 얻은 거이 있는디...”

  아니나 다를 가 다음날이었다. 새벽 같은 시간에 영감은 ‘예절서’와 ‘瑞山(서산)의 文化(문화)’ 한질을 총알같이 가져왔다. 영감의 행동이 너무 사뜻해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볼만 혀. 그런디 군 서기가 나 보구 책장사 허느냐 그러데. 허허.”

  주었다 안 받았다 했던 ‘泰安復郡10年史(태안복군10년사)’도 몇 달 뒤 어디선가 기어이 구해오고 말았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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