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낙네

(49)
마실길에 뭔가 했더니... 아침에 밭에서 따다 놓은 브로콜리 두 개가 있었다. 아낙네들의 마실 길에는 누구네집 어디론 가 들고 가는게 반드시 있다.
5월, 농촌은 다들 바쁘다 온 마을이 남정네는 남정네대로, 아낙네는 아낙네대로 다들 바쁘다. 5월은 농번기... 나만 바쁜 게 아니다.
옷 임자는 누굴까? 어제 퇴근하다가 보니 우리밭 고랑에다 누군가가 떨어뜨리고 간 옷. 여자 웃도리 덧옷이다. 지름길 삼아 우리 밭둑을 질러 지나가기도 하고 동네 아낙네들이 쑥 캐러 오기도 한다. 갑자기 날씨가 더워진 탓에 벗어 허릿춤에 끼고 있다가 떨어진 줄 모르고 갔을 것이다. 밤이슬 맞을새라 줏어 가져갔다가 아침 출근길에 다시 들고 나왔다. 멀리서 잘 보이도록 철제 지지대에 걸쳐 두었더니 반나절도 안되 걷어갔다. 임자가 찾아 갔을 것이다.
농한기, 남정네가 하는 일 오늘따라 햇살이 좋았다. 걷기운동을 가다 보니 안마을 박 회장이 마누라 일을 거들고 있다. 말린 감태를 거두어 들이는 작업이다. " 웬일로 오늘은 읍내 출입이 없소이다? "하고 농담을 걸었더니, 넙죽히 웃고 말더이다. 나는 걷기운동에서 돌아와 그 길로 오후 내내 어저께 절여 놓았던 배추로 백김치를 담겄다. 이 만한 재료에 맛이 안 날 수 없다. 숙성이 되려면 사나흘은 걸린다. 며칠 전에 담갔던 백김치가 지금 한창 맛이 들었다.
마실이 남정네를 귀찮게 하네... 농한기는 더더욱 마실 다니기 딱 좋다. 이제 곧 다가오는 봄이 되면 또다시 눈코 뜰 새 없다. 남정네들이 모르는 스트레스 해소, 수다. 시시콜콜 마을 정보 교환 등등... 잇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주거니 받거니 물물 교류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아낙네들의 마실은 또 다른 세계다. 집사람이 마실 길에 가방을 메고 나선다. 저 가방 안에 오늘은 무엇이 들었을까?... .... 한참 뒤에 전화가 걸려왔다. 무거워서 들고 갈 수 없으니 차를 가지고 와 달란다. 하던 일 만사 제폐, 달려갈 수 밖에.
백로가 있는 풍경 모내기 철이 코 앞. 남정네는 논에서 트랙터로 쟁기질 쓰레질에 바쁘다. 백로가 함께 논다. 아낙네는 밭에서...
콩밭 매는 아낙네, 마늘밭 매는 남정네 호미를 아예 걸쳐두고서 다른 밭일을 하다 짬 나는대로 마늘밭 양파밭에 김을 맨다. 허리를 꾸부려 오래 할 수가 없다. 오늘도 새삼 김매기가 힘든 줄을 알겠다. 콩밭 매는 아낙네야 /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 무슨 설움 그리 많아 /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콩밭과 마늘밭 어느쪽이 더 힘들까? 콩밭은 뙤약볕 오뉴월이고 마늘밭은 봄볕이다.
귀촌 아낙네의 하루 오늘은 봄 가을 두 번 하는 마을부녀회 재활용품 분리수거의 날, 돌아오는 길에 바다 갯벌에서 막 돌아오는 옥향할머니로 부터 낙지 두 마리를 받았다. 인근 우체국에 가서 친구에게 택배 보내기, 대문간에 들어서자 감나무에서 단감따기, 야콘 밭에서 캐둔 야콘 거두기... 그리고 돌아오는 삼시세끼 밥 때... '오늘 하루가 언제 갔는지 모르겠다'는 말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