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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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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일기...농부도 출근한다 물병 하나 들고 출근해서 첫 작업은 대체로 물 주는 일이다. 하우 안에 상치, 노지에 봄 배추, 대파 그리고 부추... 그러나 오늘은 자주 양파 밭에 풀 매기. 자주색 양파가 하루가 다르게 영글어 간다. 내일은 마늘밭 김매기다.
올려다보다, 내려다보다 가로림만의 남단, 후미진 도내리 갯마을 이곳에 어느날 외지인으로 들어와서 집을 짓고 정착한 지 17년이 되었다. 추석 명절이 가까워오면 동네 사람들은 마을 들머리에서 안마을까지 길 양쪽의 풀깎이 제초 작업을 했다. 예초기를 든 남정네가 지나가면 아낙네들은 뒤따라 가면서 빗자루로 쓸어 모았다. 수고한다며 반장은 박카스를 한 병씩 돌렸다. 명절 기분이 나기 시작했다. 추석 당일 날은 '어서 오누!' 하며 한 잔하러 빨리 오라는 독촉 전화가 빗발치듯 걸려왔다. 문 반장네 집이나 박 회장집... 아낙네들은 돌아앉아 한 점에 100원 고스톱을 쳤고 남정네들은 주거니 받거니 거나하게 술판이 벌어졌다. 반상회는 옛말. 4, 5년 전부터 풍속도가 확 달라졌다. 한적하기만 했던 산천이 이젠 의구하지도 않거니와 물도 옛물..
죽었던 무화과, 살아나다 대문간 옆 무화과 나무. 무화과가 죽었다. 봄에 싹이 트지 않았다. 무화과 나무가 그다지 크진 않아도 무화과 노래를 흥얼거리며 쩍 벌어져 잘 익은 무화과를 따먹는 즐거움이 있었다. 집사람이 무화과를 좋아하여 대문을 드나들 때마다 때론 산새들과 다투어가며 하나씩 따먹는 재미를 앗아가버린 허전함. 지난 겨울이 유난히 춥긴 추웠다. 들려오는 얘기로 이웃 몇몇 집 무화과도 모두 죽었다고들 했다. 무화과는 본래 난대성 식물이다. 오늘 마당을 정리하다 우연히 들여다 보았더니 아랫도리 둥치 중간에서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있었다. 죽은 가지의 몰골이 하두 어수선하여 베어버릴가 하다 귀촌 초기부터 다져진 15년 여 인연이 아련키도 하고 해서 그대로 두었는데... 여름이 다된 이제 새싹이 날 줄이야. 하마트면 큰..
닦고, 조이고, 기름 친다 다시 겨울로 돌아가나? 춥다. 바람까지 불어제끼니 더 춥다. 비닐하우스 안이 따뜻하다. 본 김에 이거나 하자. 공구 기름 치기. 하우스 대청소로 하나 둘 꺼내놓고 보니 갯수가 많다. 귀촌 17년에 내 손을 거쳐간 흔적이다. 녹이 슬었으나 아직 쓸만 하다.
해질 무렵 도내수로 딱히 드러낼 일은 없어도 뭔가 하루종일 부산했다. 귀촌의 일상이 그러하고 특히 요즘 그렇다. 느지막한 시간에 읍내를 다녀와 차고에 차를 댈려고 보니 발 아래 들녘이 시야에 들어온다. 포강 위로 논도랑, 논 그리고 도내수로. 어느듯 저녁해가 뉘엿뉘엿 수로에 윤슬되어 어린다.
배추 한 포기 "이그, 채솟값, 장난이 아뉴." 하나로 마트에 들렸다가 나오며 집사람이 하는 말이다. "우리밭에 있는 거나 부지런히 뽑아 먹읍시다."하며 대꾸했다. 시골 농촌이라 채소가 지천으로 거저 나오는 줄 알지만 실은 뽄때없이 비싼게 시골 채소다. 심지어 서울 가락동 경매시장까지 갔다가 내려오는 채소도 있다. 밭에 내려가 두어 포기 뽑아오면 배추쌈, 된장 배춧국, 배추나물이 된다. 얼다 녹았다 눈 비 맞아가며 삼동을 지난 배추가 사근박지고 더 달다. 땅속에 묻어논 저장무도 있다. 빨랫줄에 무청 시레기를 걷어 삶아두면 봄으로 가는 징검다리 계절에 시레깃국, 시레기 나물이 또한 별미. 말려둔 고사리, 호박, 무말랭이는 채소가 아니던가. 며칠 전, 집사람이 마실 나갔다가 "한번 드셔 보슈."하며 겨우내 온상에서 재배한..
오늘 11.972 보 걸었다 새벽에 최저기온이 영하 5도 이하로 닷새가량 계속되면 도내수로는 결빙된다. 수은주가 영하로 떨어져도 바람이 거세지 않으면 걸을만 하다. 겨울철 걷기 운동은 자칫 나태해지기에 마음을 다잡는 의미에서 오랜만에 아침나절과 오후 두 번 걸었다. 만 보는 6 키로 남짓이다. 우리집에서 태안읍내까지 가는 편도 거리에 육박한다. 가로림만 개펄 바다가 보이고 저수지 뚝방길, 솔발밭 오솔길... 아기자기하게 걸을 수 있다는 자연 환경이 오늘의 즐거움이다.
흙냄새, 흙내를 맡으면 죽죽 줄기가 뻗기 시작한다. 기가 펄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