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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村漫筆

(歲暮斷想) 도내나루의 어제, 오늘

 

 

 

'복덕방'은 나를 연포, 채석포, 안흥 방면의 관광지대를 먼저 데리고 갔다. 서울서 왔다니까 전원주택지를 찾는 큰손으로 알았던 듯. 몇 군데 물건을 보여주었으나 마뜩치 않았다. 해는 저물고, 돌아오려는 데 올라가는 길도라며 자기집 근처 마지막 한군데를 안내했다.

 

뒤로 바다가 보이고 앞으로 넓은 뜰이 있는 곳. 안마을로 돌아내려가니 옛 나루터가 있었고, 개펄이 있고, 작으나마 모래톱이 있어 소나무 그늘을 의지해 누군가가 느긋하게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이 광경이 내마음에 꽂혔다. 나의 소망은 조그만 귀촌이었다.

 

그동안 복덕방을 거쳐간 손님들, 아무도 거들떠 보지않았던 곳을 내가 선뜻 매매계약을 결정하자, "땅은 역시 주인 따로 있다" 며 한 건 올린 안도감에 젖은 '복덕방'의 표정과 그 한마디가 지금도 생생하다. 2003년 어느 여름날 나는 이곳에 터를 잡고 이듬해 집을 지어 해넘이는 안된다며 섣달 그믐날 기어코 집들이를 했다.

 

그 뒤 여담이지만, 친구가 되어버린 28년 이장을 지낸 버갯속영감님 (블로그 카테고리 '버갯속영감 교유기' 참조)은 살아생전에 "이러키 구석진 곳에 워찌 알구 찾아왔남?"하면서 몇 번이나 의아해 마지않았다.

도내리에서도 한참 더 후미진 안도내. 2십리 읍내길을 꼬불진 해안을 돌아 걸어서 다닌 오지 중에 오지였다. 정가없는 세월이 어느덧 20년이 흘렀다.

 

 

 

 

 

 

여름이면 반딧불이가 날았다. 절간같이 고즈넉했던 이곳에 5년 전부터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마을 들머리에서부터 군데군데 10여 채다. 기획부동산 검은 차량들의 왕래가 빈번했다. 대형 덤프 오가고 레미콘, 포크레인의 작업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흙을 밟고 걷던 소롯길이 시멘트 레미콘으로 포장되었다.

 

급기야 안마을 당산까지 누군가의 손에 넘어갔다. 소나무가 베어지고 산등성이를 깎아 주택지를 만들었다. 제 땅에 주인 노릇하는 걸 무슨 말로 하소하랴만 수려했던 풍광이 하루 아침에 무너져 실색 했다. 을씨년스럽고 살벌해졌다. 옛 도내나루가 아니다.

 

당산을 몇 구비 돌아서 내려가면 도내나루가 한눈에 든다. 왼쪽으로 이화산을 배경으로 쌍섬. 얼기설기 갯골에 개펄이 질펀하다. 오른 편으로 창갯골 당섬을 지나 굴포운하 사적 너머로 팔봉산능선 . 우리집에서 걸어서 10분이면 닿는 곳.

 

한동안 발길을 끊었다. 어제, 반년 만에 모처럼 모진 마음으로 찾아갔던 것. 물이 든 개펄 가운데 쌍섬이 이제나 저제나 변함없이 유유히 떠 있었다. 내가 이름을 붙인 도내나루터 지킴이 '커크 더글러스'도 여전했다. 그러나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진행형인 공사판 돌더미가 삭막했다. 허전했다.

 

 

...................  2021년이 저문다. 歲暮. 마침 함박눈이 내린다. 온 세상이 하얗게 펑펑 쏟아지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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