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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무 아리랑

LG93-98 김상무 아리랑(29화) 첫 보고회를 11월 8일로

 

29.

 

 

첫 보고회의 날을 (93년) 11월 8일로 잡았다. 사업 진단과 조직 진단을 병행하는 <12개 주요사업>의 현상파악 작업이 방대하여 12월말까지 1단계 완료하는 일정에서 중간 과정을 보고하는 일정이다.

 

8월 30일 에이프랜 팀이 출범한 후 실질적인 첫 <스티어링 커미티>이자 에이플랜 팀으로서 데뷔전이었다. 보고회의 날이 가까워 올수록 나도 긴장되었다. 첫 작품에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일념이었다. 

 

에이플랜 작업 프로세스가 전 단계에 도출된 결론이 다음 단계의 전제가 되는 체계다. 프로세스 하나하나에 완전무결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생산관리에서 전 공정의 부품 불량이 후 공정의 제품 불량을 만드는 거와 같은 이치다.

 

 에이플랜 팀, 매킨지 멤버, 그룹 V-추진본부 지원팀 모두는 하루 하루가 스트레스에 묻혀 지나갔다.

 

 

 

 

 

 

에이플랜 팀의 작업은 실제로 한 달에 불과했다. 계획했던 일정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맞추어가고 있었다.

매킨지도 에이플랜 팀의 일사불란한 협동 작업에 놀라움을 금치 않았다. 의도했던 수준에 도달한데 흡족해 했다.

 

 

 

 

두 달여 전, 8월 9일이었다. 뭔가 결재를 받고 나오려는 나를 이희종 CU장은 도로 눌러 앉혔다. 

 

"김 이사, 잠깐 앉어봐! 통합작업, 누가 좋을까?"

 

 

"................"

 

 

나더러 추천하라는 말씀은 나더러 맡으라는 뜻이었다는 걸 직감했고 곧 현실화되었다.

 

 

 

 

8월 11일, 아침부터 매미 소리가 극성스러웠다.

 

"어, 김 이사. 자네가 뽑혔어!"

 

경영회의 마무리 시간에 나를 불러놓고 하는 말이었다. 투표를 했는데 9대 3으로 당선되었다는 과정까지 자초지종을 전하는 CU장의 표정이 의외로 밝았다.

 

 

이날의 경영회의 멤버는 이희종 CU장, 김회수 기전사장, 허창수 산전부사장, 성기설 계전사장, 권태웅 하니웰사장, 최호현 연구소장, 구자욱 기전관리담당 전무, 이중칠 산기사업본부장 전무, 박충헌 산전관리본부장 전무, 구정길 시스템사업본부장 전무, 김용호 기전 승강기사업부장 상무, 서정균 전략기획본부장 상무 등 모두 12명이었다.

 

 

"팀 명칭는 말야, <A플랜>으로 하지!"

 

"일 할 사람들 빨리 뽑고 장소도 정해! 전권을 다 줄테니... 그동안 담당해온 총무,업무,인사 업무를 박충헌 전무에게 인계하고... "

 

'한시라도 빨리' 에이플랜을 총 지휘해달라고 재차 강조하는 말에는 무언가 쫒기는듯 했다. 그룹 회장실의 압박이었다.

 

 

산전CU 3사 통합은 김영삼 정부의 '신경제 정책'에 따른 소위 '문어발식 기업 정리의 일환'으로 럭키금성 그룹의 계열사 정리를 의미했다. 54개에서 41개로 축소하는 결정은 그룹 사장단회의에서 논의가 완료된 상태였다.

 

 

3사의 통합 작업은 물리적인 합병이 아니라 '우리의 비전을 가꾸는 작업'이라고 CU장은 말했다. 그러나 산전, 계전, 기전 3사의 앞날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되는 조직 내부적으로 번질 파장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안으로는 노조가 있었고 대외적으로 해외 합작선이 있었다. 

 

 

 

 

 

 

 

이미 8월 5일자로 된 <대 약진을 향한 신체제의 확립을 위해> 라고 표제가 붙은 매킨지 제안서는

 

... ... Top Management의 직접적인 지원 하에 전사혁신 프로젝트팀을 운영한다. 사장이 Steering Committee 의 의장이 되며 프로젝트팀을 구성한다.

 

산전에서는, 프로제트 리더로 이사 급 이상인 자, 멤버는 부 과장급 7명을 선발한다.

리더와 멤버들은 프로젝트의 각 검토 작업을 주체적으로 수행하며 각 부문과 절충 의견조정 등을 통해서 의식과 행동의 혁신을 촉진한다.

 

매킨지에서는, Director(파트타임),  Engagement Director(파트타임)으로 아카바,  Engagement Manager(풀타임)으로 후지모토,  Consultant(풀타임)에 아라마키, 최동욱이 참여 지원한다.

 

활동내용은

주요사업의 진단(5개월) > 사업구조의 변혁 안 작성(2개월) > 조직요건의 명확화(2개월) > 전사 조직의 기본 설계(2개월) > 조직의 운영시스템 확립(4개월) > (신체제의 결정) > 이행준비(2개월) > (신체제 도입) >실시 팔로업 및 신 사업부장 지원(3개월) 이며 기간은 1년 6개월로 한다... ....

 

 

이런 내용이었다.

 

 

 

 

 

 

에이플랜 팀 인원 구성은 이렇게 윤곽을 잡았다. 12명이다.  12명 중 7명은 전혀 만난 적이 없는 친구들이다.  

 

* 자동화... 박진홍 부장(자동화) 금성산전. 역전빌딩

* 상품기획... 최공범 과장( E/L ) 금성기전. 트윈타워

* 마케팅, 영업... 한창진 부장( 자판기 ) 금성산전. 역전빌딩

                              김연식 과장( E/L ) 금성산전. 역전빌딩

* 자재, 구매... 김무진 부장( 자재 ) 금성하니웰. 부평공장

* 생산기술... 박동원 부장( 전기기기 ) 금성계전. 청주공장

* 설계... 전윤호 부장( 전자기기 ) 금성기전. 천안공장

* QC... 윤용호 과장( 플란트 ) 금성산전. 오산공장

* R&D... 강용만 과장( 안양연구소 )

* 수출... 임봉구 과장( 범전기기 ) 금성산전. 트윈타워

* 인사... 강명철 부장( 해외기획 ) 금성산전. 트윈타워

* 재경... 문동일 부장( 경리 ) 금성산전. 창원공장

 

 

 

키 멤버인 강명철 부장, 한창진 부장, 박진홍 부장을 데리고 있는 임원들부터 협의를 시작했다. 이 세 사람의 상위자는 이병무 상무, 이창재 상무, 이용우 상무였다.  모두 호락호락한 분들이 아니었다.  

 

이 세 사람 만 각개격파하면 절반은 성공한 셈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여의도와 역전빌딩을 몇 번 오가며 과정은 힘들었으나 결국 해냈다. 우여곡절 막판에 기전 전윤호가 이희양으로 대치되었다. 

 

 

 

 

 

 

 

 

“ 맞어! 김 이사. 이번 통합작업은 공부도 하면서 우리 스스로의 자질도 높이고... 좋은 기회야. ”

“ ................... ”

 

‘ 우리의 자질을 높이는 기회. ’

 

 

1년 7개월 동안 매달 2억 원이라는 돈이 매킨지에 들어가는 에이플랜 프로젝트이다.  38억 원은 비싼 수업료다.  그 뿐만 아니다.

매킨지 컨설턴트 3인의 호텔 숙박비, 매주 주말 일본을 왕복하는 항공료 등 간접 경비가 별도로 있다.  이희종 CU장의 의중은 구호가 아닌 실질이었다.

 

'산전 본질의 추구'.  '산전 사업가치의 추구'와 맥락을 같이하는 CU장의 말씀이었다.  결국 인재육성이었다. 

 

 

 

 

 

 

 

 

 

닷새 만에 트윈타워 24층을 계약하고 칸막이 공사는 초고속으로 완료했다. 집기 비품도 빠짐없이 조달이 되었다.  ‘통합 산전’과 ‘에이플랜 팀’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무게가 협조부서의 움직임을 빠르게 했다.

 

이희종 CU장에게 주요사항을 구두로 상의하면서 에이플랜 팀의 비용은 선집행(先執行)으로 처리해 나갔다.  사전 품의나 결재가 필요 없었다. 

 

사업활성화 팀 즉, 에이플랜 팀의 출범에 앞서 예산을 수립했다.

 

 

 

 

 

 

 

 

 

8월 20일 11시에  첫모임을 소집했다.  내가 에이플랜 팀장으로 결정이 된지 여드레 만이다.  창원, 청주, 천안, 인천 등 각 공장에서 올라오기 때문에 11시로 정했다. 되돌아 가는 시간도 고려했다.

 

트윈타워 서관 24층이었다.  칸막이 공사를 급히 마무리하느라 어수선함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코끝을 찌르는 페인트 냄새가 마치 전투 상황실같은 긴박감을 더해주었다.

 

 

먼저 8월 11일의 경영회의에서 < 에이플랜 팀 >으로 결정된 배경과  계전 성기설 사장, 기전 김회수 사장, 하니웰 권태웅 사장, 허창수 부사장 등 경영회의 멤버에게 이희종 CU장이  강조한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매킨지의 도움은 어찌 생각하면 퍽 자존심이 상하는 일입니다.  매킨지는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최종적인 판단은 결국 우리가 합니다."

 

 

사흘 뒤 8월 23일부터 트윈빌딩 에이플랜 팀에서 근무하도록 지시했다. 

 

 

 

 

 

 

사전 <프리 인터뷰>를 위해 A, B 두 팀으로 구성했다.   A 팀은 부사장 급 이상으로 후지모토와 하희조 부장이 맡고 B 팀은 경영회의 멤버와 일부 사업부장으로 아라마끼와 박희석 과장이 담당했다.  

각 팀에는 산전 멤버 한 두 명, 매킨지 1 명, 회장실 V-추진본부 지원팀에서 1 명이 동석하게 되었다.  

나는 성기설,김회수,권태웅 3사 사장과 허창수 부사장 인터뷰 만 참석했다.  이희종 CU장은 제외했다.  

 

 

 

 8월 16일 나는 창원공장에 갔다.  창원공장의 ‘ 현장사원 간담회 ’에 참석하기 위함이었다.   에이플랜 팀을 맡기 전에 잡힌 일정이었으나 약속은 약속이므로 지켜야 했다.

 

나는 전사적으로 가시화 된 CU 통합에 대해 생산현장의 기류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 프리 인터뷰 >가 어차피 이런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가 참석 대상이 아닌데 노조 간부들이 내가 내려간다는 소식을 미리 알고 들어왔다. 지난 7월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된 손용환 위원장도 참석했다. 2십 여 명의 대화 촛점은 단연 3사 통합이었다. 역시 신변에 대한 불안이었다. 

 

산전, 계전, 기전 3사의 조직문화가 다르다. 피해의식을 극복하는 과제가 문제다. 앞으로 3사 통합 작업과정에 불필요한 노사 갈등과 공장간에 마찰 등 불안과 피해의식을 줄여야 하겠다는 생각을 다시하게 되었다.

 

 

 

 

 

 

 

8월 30일, 에이플랜 프로젝트는 출범했다. 에이플랜 팀은 사업부의 영업과 생산 현장에서 현장의 사원들을 리더하면서 현상을 파악하는데 열중했다. 현장과 매킨지의 가교 역할 또한 에이플랜 팀 멤버의 몫이었다.

 

조정과 조율을 통해 프로젝트의 작업시간을 절약하고 효율을 기할 수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의 예상이 적중한 데 일단 안도를 했다.

 

나는 공개적으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그것은 부장급으로 에이플랜 팀 멤버가 구성된 결과라고 내심 생각했다. 매킨지는 과장급 7~8명을 제안했으나 나는 부장급을 주축으로 15명으로 늘였다. 

 

단기간에 에이플랜 운영의 골격이 다듬어졌다. 기본 스킬을 배양하기 위해 매킨지 주도로 자체 워크샵도 거쳤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운영의 패턴을 익혔다. 가속도를 붙이는 건 다음 단계다. 첫 단추는 말이 쉬워서 첫 단추지 시동을 건다는게 어려운 과정이었다.

 

내후년 95년까지 통합작업 1년 6개월 일정에 겨우 1.5개월이 지났을 뿐이다. (29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