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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무 아리랑

LG 93-98 김상무 아리랑(27화) 숨돌릴 틈이 없었다

 

27.

 

 

숨 돌릴 틈이 없었다. 다음날, 에이플랜 팀은 < 제1차 멤버십 트레이닝 >에 들어갔다. 팀 자체 연수는 3 일간의 강행군이었다. 후지모토, 아라마끼, 최동욱 등 매킨지 컨설턴트 멤버들이 강사가 되었다. 팀 리더인 나도 회의실 한 쪽에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멤버십 트레이닝 교육은 매킨지 수준으로 볼 때 기초 과정이었다. 그러나 산전 멤버들에게는 지금까지 받아온 사내교육과 전혀 달랐다. 진행하는 패턴 자체가 다르고 용어와 어프로치, 사고의 틀이 달랐다.

 

케이스 스터디 중심이었다. 발표를 한 다음 질의응답으로 토론을 유도했다. 상호 채린지를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이해가 안되는 대목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이제야 말로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구나' 하는 느낌을 에이플랜 팀 모두가 온몸으로 받는 순간이었다. 교재의 분량도 많았다.

 

매킨지는 영어와 일본어가 능통했다. 에이플랜 멤버는 가능한 외국어가 일본어와 영어가 반반이었다. 영어와 일본어를 적절히 혼용한 의사의 전달 방식은 효과가 있었다. 전체 회의나 교육에서는 기본적으로 일본어를 사용했다.

주요 내용은 박진홍이 부연 설명을 곁들어 통역을 하므로서 의사소통에서 오는 오해의 소지를 없앴다. 이때부터 에이플랜팀의 서브 리더로서 박진홍의 1인 3역이 시작되었다.

 

 

 

 

“ 매킨지가 추구하는 일의 요체는 '문제 해결'입니다. 해결책을 만들어 내는 기본 사고가 다음 세 가지입니다. ”

 

후지모토가 깨알같은 글씨로 전자 칠판에 써 내려갔다.

 

 

‘ Fact-based

Rigidly structured

Hypothesis-driven ‘

 

 

그 친구는 왼손잡이였다. 둥근 얼굴에 검은 테 안경까지 끼었다. 게다가 큰 덩치를 재바르게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양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코믹하게 했다.

 

 

“ '문제 해결'의 본질은 사실을 얼마나 파악했느냐에 있습니다. 문제의 구조화입니다. 문제를 구성하고 있는 이슈를 찾는 틀입니다.

그 다음 단계는 가설을 세우고 해결책으로 접근해 갑니다. 가설을 설정하고, 해결방안을 도출하여 실행하므로서 이를 검정하는 것으로, 가설이란 해결안을 미리 설정해보는 겁니다. ”

 

 

 

“ ‘가설 지향적 사고’란 무엇인가. 문제해결을 위해 신속하게 접근하는 프로세스입니다. 실제의 분석 활동에 들어가기 전에 가설을 먼저 수립하고 이를 확인하고 수정을 거듭함으로서 빠른 속도로 결론에 도달할 수가 있습니다.

다분히 직감을 중시합니다. 감이 안 잡힐 경우에 넓은 범위에서 점차 좁혀 나갑니다. 특히 탑으로부터 제기되는 이슈와 관심 사항이 성공적인 해결방안을 찾는 지름길의 하나입니다. “

 

 

누군가 질문을 했다.


“ 가설이라는 이름으로 미리 해결안을 가지면 고정관념에 묶여 제대로 된 답이 나오기 힘들지 않겠는가? ”


계속 질문이 나왔다.


“ 고정관념과 가설, 이율배반적인 견해 아닙니까? ”


“ 그럴 소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해결안의 하나로 생각하고 편하게 접근하면 되지 않겠어요. ”


누군가가 호응을 했다.


“ 밑바탕부터 죄다 훑다가 보면 시간을 허비하는 수가 많아요. 브레인 스토밍의 한 방편으로 보면 되지 않을 가. ”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 이거냐 저거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보는데요. 비현실적인 가설이라면 버리면 그만 아닐까. 가설은 직감인 동시에 통찰력의 소산이라 생각합니다. ”

 

 

 

 

 

 

7S,  3C분석,  KFS,  FAW,  2.8의 법칙,  MECE,  Logic Tree, Gap의 명확화, 가설지향 등, 이런 개념들을 설명하고 이해하는 실제 연습에 들어갔다.

 

전개한 내용을 돌아가며 발표를 했다. 매킨지 멤버들이 적절히 코멘트를 해주었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 ‘Fact Base'는 현장의 사실에 근거하여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판단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논리입니다. 육감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과 일치합니다.

‘Fact Base' 자체가 신뢰를 형성하는 원천입니다. 현장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

 

우리는 현장을 이렇게 정의했다.

 

‘ 현장이란, 회사 안에서는 생산과 영업이 일어나는 곳, 바깥에서는 우리의 고객이 있는 곳 그리고 경쟁사가 있는 곳을 일컫는다. ’

 

 

 

현장이 왜 중요한가에 대해 논의했다.

 

‘ 현장의 확인을 통해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의 발견 그 자체가 문제해결의 절반을 도와준다. 해결방안을 도출하게 할 뿐 아니라 문제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 그리고 문제 해결에 대한 컨센서스를 쉽게 이룰 수 있도록 해준다. ’

 

“ 팩트가 출발점이다... 이런 뜻이군요. ”

 

나는 이렇게 요약했다.

 

 

 

MECE.

 

“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중복이 없이 구분이 되며 사람의 전체를 포함하는 집합입니다.

즉, 서로 배타적이면서 부분의 합이 전체를 완벽하게 구성하는 합을 이루는 구조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MECE입니다.

 

따라서 구분이 명확하고 전체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자와 기혼 남성은 상호 중복이 되며 사람 전체를 포함하지 못하므로 MECE가 안됩니다. ”

 

'MECE ( Mutually Exclusive and Collectively Exhaustive )‘가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러한 사고는 문제해결에 폭넓은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가 있었다. 경영상의 문제를 분해하여 빠짐없이 점검하는 논리적인 사고를 촉진했다. 이것이 Logic Tree의 중요한 패턴이었다.

 

 

 

에이플랜 팀 멤버들에게 이러한 개념들은 생소했지만 충분히 이해가 되는 경험들이 축적되어 있었다. 실무적으로 익히기 위해서 연습 문제를 풀고 분임 토의를 했다. 팀 멤버들 각자의 책상에는 자기나름대로 스스로 주어진 테마에 대해 그려본 로직 트리( Logic Tree ) 연습지가 쌓여갔다.

 

로직 트리 그리기 연습은 아무리 많이 해도 지나침이 없어 보였다. 스스로 설정한 과제에 대해 로직 트리 그리기를 반복하므로서 문제해결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시도를 체질화했다.

 

 

에이플랜 팀 멤버들은 토론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개인별로 또는 조별로 발표를 했다. 발표 내용에 대해 가차없는 비판으로 자기 견해를 피력했다. 그러나 대안이 없는 비판은 용납되지 않았다. 상대방을 평가하면서 대안을 제시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갔다.

 

 

대안.

 

에이플랜 멤버들의 의식을 지배하게 된 주요한 개념이었다. 바로 에이플랜 팀의 정신이었다.

 

' 소설가 되려다 평론가 된다더라... '

 

나는 평소 이 말을 자주 썼다. 대안 제시 없는 논쟁은 빈껍데기 공론에 지나지 않았다. 

 

“ 대안의 제시야말로 상대방을 이해하는 첫 걸음이자 예의가 아닐가. 그런 면에서 스스로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자기관리의 징표라고 생각해. ”

 

 

 

 

<제1차 멤버십 트레이닝>은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나는 멤버십 트레이닝을 통해 변해가는 에이플랜 멤버들을 새삼 발견했다. 서서히 다가오는 수많은 발견의 시발이었다. 무엇보다도 참가자 전원이 즐기는 교육이었다는데 나는 주목했다.

 

매킨지나 에이플랜 팀의 우리 멤버나 신이 나 있었다. 앞으로 열어야 하는 신천지... 통합 산전의 주역이 된다는 긍지이자 자신감의 소산이었다.

 

 

첫 출발 엑설레이터는 밟을 수 있는 한 최대한 밟아서 가속도를 붙였다. 그것이 교육이든 과제 해결이든 주어진 때가 있고 결과의 성패는 항상 첫 걸음에 있었다.

 

 

기초과정은 에이플랜 프로젝트 수행에 기반이 되었다. 이후 <에이플랜 멤버십 트레이닝> 회수가 늘어가면서 깊이는 더해 갔다.

수 없이 거듭된 <멤버십 트레이닝>은 뒷날 <스킬의 자체평가 제도>와 함께 에이플랜 멤버의 장기적인 육성 툴로 정착되었다. 나아가 <전사 인재개발 위원회>에서 인재개발과 육성 프로세스의 기초가 되었다.  

 

 

 

 

 

 

 

 

 

 

한편, 서브 리더인 박진홍을 중심으로 에이플랜 팀 운영에 대한 일반적인 사항을 논의해보도록 했다. 에이플랜 팀 자체 회의체 운영과 위임 전결기준을 만들고, 박진홍, 문동일, 박동원, 한창진을 선정하여 각 부문의 창구 역할을 하면서 매주 정례회의를 갖기로 했다.

 

 

 

에이플랜 팀에서 내가 앉는 고정의 자리는 없었다. 미팅이나 교육에서 내가 앉는 자리가 내 자리였다. 나는 일부러 끄트머리에 앉기도 했다. 과장 직급의 멤버를 의도적으로 상석이라 생각하는 자리에 앉혀 장차 리더로서 자신감을 북돋았다.

 

통상적으로 전면 중앙이 상석이다. 비좁은 장소에 상석이라며 자리를 비워두는 것은 비효율이었다. 회의 중간에 앉아있던 자리를 양보하느라 시간 보내고 분위기 깨는 일은 하지말자는 생각이었다.

 

2년 전, 그룹의 혁신활동으로 간접부문 효율화 프로그램이었던 <OVA 프로젝트>를 담당할 때 나는 철저히 이런 관행을 버렸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때도 나는 중간에 서지 않았다. 팀 리더인 나도 멤버 그 중에 하나였다.

 

 

장시간의 미팅은 물론이거니와 회식 때도 넥타이를 전원이 풀었다. 풀어서 뭉쳐 두었다가 끝날 때 자연스럽게 바꿔매고 가기도 했다. 회식 때 한 쪽 가장자리에 쌓여있는 넥타이 무더기는 가관이었다. 에이플랜 팀만이 느낄 수 있는 온기가 스며 있었다.

 

 

격식의 타파였다. 나의 방에 들어오고 나가는데 ‘문턱’이 없어졌다. 상징적인 의미에서 문턱을 말했다. 본래 상무이하는 반 칸막이 파티션은 있되 여닫는 문은 없었다.

 

어쩌다가 슬쩍 들여다 보거나 기다리는 친구가 있으면 나는 즉각 불러 들였다. 무슨 용건이 있기에 왔을 터, 나중에 다시 오는 번거로움을 없애자는 의도였다.  

 

활짝 열려 있었다. 나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 머리가 크고 작고 직급에 관계없이 나한테 달겨들었다. ’

 

 

지금 나의 머리를 메우고 있는건 본질의 추구와 시간이었다. 이제 시작이다.(27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