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마을 쪽으로 몇 집 건너 '박 회장'은 주민등록증으론 나보다 하나 밑이나 출생신고가 늦었다는 동네 사람들의 당시 증언을 감안하면 오히려 한 살 위 개띠 일흔 셋이다. 읍내 어느 장학재단의 돌림빵 회장을 역임한 전력을 이유로 어정쩡한 '박 형' 대신 모양새 좋게 나는 깍듯이 '회장님' 칭호를 붙인다. 갑상선 이상으로 병원 신세를 진 몇 년 전부터 "이젠 농사를 줄여야제.. 줄여야제..." 하는 소리를 입에 달고 지나면서 끝내 논 한 마지기 밭 한 밭뙤기도 줄이지 못하는 평생 농민텃수다.
아침 산봇길에 만난 박 회장은 인력시장에서 데려온 중국사람 일꾼 둘을 데리고 모내기 모판에 쓸 상토작업을 하고 있었다. 오후에는 우리집 대문 코 앞에 트랙터를 몰고 나타났다. 로타리 치기 전에 퇴비 살포작업을 했다. 우리집 옆의 비탈진 밭은 인천에 사는 누군가의 땅인데 그동안 옆집 아주머니가 빌려 농사를 짓다가 올해 드디어 '항복'을 했는데 이걸 박 회장이 인계를 받았다는 것. 농사를 줄이기는 커녕 되레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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