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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소설가 박태원과 <기생충>봉준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나운규의 <아리랑> 이후 우리나라 100년 영화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비롯 4개부문을 수상하므로서 잔잔한 축하 물결에 청와대 짜빠구리 천박한 웃음이 찬물을 끼얹긴 했어도 영화동호인의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봉 감독이 작가 박태원(朴泰遠  1909-1986)의 외손자라는 걸 최근 알았다.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라는 작품으로 알려진 박태원은 1930년대 <날개>의 이상과 더불어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로 분류된다. 당시의 글들을 보면 시시콜콜한 신변잡기도 리얼리즘 문학 장르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러나 오늘 월북 작가로서 박태원, 영화감독 봉준호 작품세계를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서재 서가에 마침 박태원 작품집이 하나 있기에 꺼내 열어보았다. <구보가 아즉 박태원일 때>. 여기 구보(仇甫)와 박태원(泊太苑)은 박태원의 필명이다. 비교적 최근 2005년에 발간된 수필집으로서 1930년대 당시 일간지나 잡지에 기고했던 '잡다한 글'들이다. 맨 뒤에 박태원의 연보가 나온다. 박태원은 2남 3녀를 두었다. 1936년에 첫딸(설영), 1937년 둘째딸(소영), 첫아들(일영), 둘째아들(재영), 셋째딸(은영) 이런 순서인데 봉준호 감독의 어머니가 둘째딸인 소영이다.





1939년 <여성>지에 게재된 <결혼 5년의 감상>에서 구보는 이렇게 썼다.

 

...안해가 큰딸 설영이를 낳은 것은 소화 11년 1월 16일 오후이었습니다... 나는 안해를 동대문 부인병원에 맡겨두고 그대로 거리를 헤매 돌았습니다. 더욱이 초산이라 하여서 진통도 심한 모양이었는데... 나는 어머니와 안해의 어머니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다방 '낙랑'에서 李箱이와 차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둘째딸 소영이 적에도 한가지였습니다. 새문밖 살 적이었는데 이번에는 병원에 안 가고 집에서 낳기로 하여 미리 산파에 부탁하여 두었던 것이나 내가 산파를 부르러 나간 그 사이에 혼자서 아기를 낳어 놓았습니다...



글이란, 무거운 담론보다 작가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신변 잡기가 읽기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