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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村漫筆

귀촌일기- 야콘밭에서 나누는 <나의 농사 이야기>






농사 짓는 땅이 300평 이상이면 '농업경영체'에 등록할 수 있어 국가로부터 농민의 자격을 얻는다. 농업협동조합에도 가입할 수 있다. 가끔 기록하게 되는 내 직업란에 나는 '농민'이라 힘을 주어 눌러 쓸 수 있는 건 나라로부터 받은 자격증의 힘이다. 나는 15년차 농민이다. 그러나 내가 가진 땅은 기껏 700평이다.  


그것도 대지 100평을 빼면 600평에서 크게 소출이랄 게 없다. 밭 가운데 매실나무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감나무, 사과나무, 배나무, 모과나무, 복숭아나무, 대추나무, 밤나무들이 담장을 두른듯 서있는 형국이 우리 농장의 모양새다. 그나마 초여름에는 매실이, 가을이면 대봉 감나무 몇 그루가 제구실을 할 뿐 다른 과일 나무들은 열리면 열리고 안열려도 그만 오로지 봄철 한 때 꽃이나 감상하는 구색용이 되어버렸다.


올핸 뜻밖에 대문간에 무화과가 줄기자게 열어주어 톡톡히 효자노릇을 했다. 씨알은 작아졌지만 지금도 열리고 있어 텃새들과 신경전을 벌여가며 잘 익은 무화과를 딸 때마다 집사람의 환호하는 모습이 어린애들처럼 천진스럽다.






매실나무 주위 삥둘러를 일구어 감자를 심고 사이 사이에 이런저런 채소를 심어 텃밭으로 삼는다. 올해도 봄에 씨감자 두 상자를 심었고, 읍내 모종시장에서 모종을 사와 토마토, 고추, 오이, 파프리카, 들깨, 호박,박, 가지를 심었고, 인터넷으로 종자를 구입하여 상치 치커리 쑥갓 겨자채 등 쌈채소를 갖추어 심었다. 다년생 부추밭은 따로 있다.


모종시장에서 만난 '미인고추 예찬론자'를 자처하는 누군가의 권유로 올해 처음 심어본 미인고추가 생각지도 않게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었다. 지나가듯 하는 남의 이야기도 가끔 귀담아 들을 일이다.





여름이 가고 이슬 내리고 소슬바람이 일자 쌈채소 잎새는 누렇게 어새지고 열매 채소 줄기는 말라간다. 토마토 잔가지를 이리저리 헤쳐가며 알토마토를 땄다. 각다귀 모기떼가 얼굴과 팔목에 달라붙어 극성이다. 오늘 딴 토마토가 끝물이다. 오로지 가지만 아직도 꽃이 피는 걸 보니 서리가 내리기까진 열심히 열어줄 태세다. 하긴 고추도 완전히 마감한 건 아니다. 며칠 있다 쳐다보면 몇 개씩 열려있다.


잡초 속에 갇혀있는 감자 이랑에는 아직도 캐지못한 감자가 꽤 많이 있다. 예초기로 잡초를 잘라내가면서 쉬엄쉬엄 캔다. 하지감자라 해서 반드시 하지 때 캐야한다는 법은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듬해 봄에 밭갈이할 때 감자 씨알이 또록또록하게 온전하게 나타나는 감자를 봐왔기 때문이다. 따뜻하게 애지중지 보관해야 하는 고구마와 달리 기나긴 겨울을 땅 밑에서 지내도 아무 탈이 없는 게 감자의 속성이다.





이제 밭에 남은 건 야콘이다. 지난 가을 야콘 캘 때 뇌두를 따로 떼어 거름부대에 담아 겨울내내 현관 안에 간수했다가 봄이 되자 돋아나는 새싹을 일일이 떼어내어 모종컵에 심어 모종을 만들었던 야콘이다. 내손으로 손수 야콘 모종을 만들었기에 같은 작물이라도 한결 애정이 더 간다.

다른 채소 거두기에 바빠 한동안 방치했던 야콘밭 주위의 잡초를 예취기를 돌려 제거해 주었다. 한 달쯤 뒤, 첫서리가 올 때 쯤 잎이 누릿누릿해지면 캘 것이다. 겨우내 고구마,감자와 함께 아침 밥상의 주식으로 그만이다.






우리집 작물들은 잡초 등쌀에 고생을 많이 한다. 미안스럽다. 시간 나는대로 뽑아주고 깎아주어도 역부족이다. 생명농법의 창시자라는 일본의 어느 학자는 '아무 것도 하지않는' 자연농법을 주창하였지만 일반 농삿꾼은 따라 할 수가 없다.

로하스, 로컬푸드, 로커보어니 하며 한때 유행했던 '신토불이'도 말이야 좋지만 일반 소시민이 실천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남아도 그만 모자라도 그만, 내가 일구는 땅에서 내 먹거리는 내가 생산한다는 그 생각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