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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귀촌일기- '미국서 온 사진 두 장'의 추억(1)








한 직장에 몸담았던 배병렬 후배가

1985년도 쯤 그 무렵에 미국으로 갔다더니

최근 내 블로그 방에 불쑥 찾아왔다.


오랜 이국 객지생활에서

가끔 이런 앨범 속 사진들을 들춰보며

울적한 마음을 다스렸노라며 

며칠 전 이메일로 사진 넉 장을 보내왔는데

다시 두 장을 보내왔다.


30여 년 전 옛사진을 보니

새삼 그 시절이 생각난다. 


이번에 보내온 사진 두 장은 실제

같은 날 한 장소이다.


사장실에서 사장과 사원 대표가

간담회를 하는 날이다.


1982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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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LG'는

1996년 이후 그룹명이며 그 전에는

'럭키금성'이었고 '럭키'그룹이었다.


80년대 그룹에는 20 여 자매사가 있었는데

금성계전은 충무로 3가 극동빌딩 17층에

본사를 두고 오산과 청주에

공장이 있었다.


1974년 창립된 금성계전은

일본 후지전기와 기술 자본 합작회사로서 

산업용 전기제품 생산 분야의

잘 나가는 회사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10.26 후 5공이 들어서자 

중화학 공업 육성정책이 바뀌면서

불똥이 금성계전에도 틔었다.


초고압 중전분야는 효성그룹이 담당하고

저압기기는 계전이 하도록 결정되면서

이미 80억 원(당시)의 투자가 된 상태였기에

회사는 혼란에 빠졌다.


고유가,엔고,고금리 즉, '3고' 시대였으므로

회사는 경영악화로 곤두박질쳤다.


급기야 1982년 봄, 사장이 바뀌었다.


윤욱현 사장이 물러난 자리에 구자경 회장은

금성사 최선래 부사장을 사장으로,

기획조정실의 김영태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켜 보냈다.


사장과 부사장을 짝 지어 보내는 인사는

없었던 일이었다.


최 사장과 김 부사장을 돌아앉아 다들

'점령군'이라 불렀다.


10원짜리 전표 결재도 부사장 선까지 올라갔으며

출근은 있어도 퇴근은 없다 하리만큼   

초긴축에 살얼음판 분위기였다.


퇴근 때면 으레 동아상사 골뱅이 맥주 한잔도

지하 극동다방의 배달 커피도 사라졌다.

점심 저녁식사는 인근 고바우집을 계약해서 

나눠주는 식권으로 해결했다.


나는 한해 전 1981년 총무부장을 승진했는데

'점령군'이 오고나서 조직 개편과 인사이동으로

심사부장으로 자리가 바뀌었다.


심사부에는

심사과(김종식),업무개선과(성효경),전산과(이상기)가 있었다.


심사과는 예산 편성권이 있었고,

업무개선과는 감사를 담당했다.


심사부장은 사장, 부사장 지시사항을

꼼꼼히 챙겨야 했으므로

사장이 참석하는 사내 회의나 공장 순방 때는

반드시 동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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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도 같은 맥락이다.


최선래 신임 사장이

조직의 현상과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한

사원 대표 모임이었다.


조달과 김경선, 업무과 배병렬이 보인다. 

뒷줄에 배석한 성효경 과장과 나.


어느듯

30대 부장은 고희가 넘었고

20대는 환갑을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