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를 더 느끼는 건 기온이 낮아서가 아니라 바람이 부는 날이다.
체감온도라는 말이 이래서 나왔나보다.
아침나절에는 바람이 자다가 해가 중천에 와서 서쪽으로 기울 무렵에는
영락없이 바람이 인다.
마당에는 바람끼가 없다가도 대문을 나서는 순간 바람이 세다는 걸 느끼면
앞뜰로 가려던 행선지를 바꿔 집 앞의 소롯길로 간다.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소나무 숲 속에 들어서면 조용하다.
오전 오후 두 번 이 길을 걷는다.
나에게 유일한 겨울 운동이다.
언덕배기 끝까지 갔다가 되돌아와 소롯길 가운데 조그만 나무를 반환점으로
해서 다시 왔다갔다 한다.
백 미터 쯤 되는 거리다.
다섯 번 왕복, 열 번 왕복, 많을 때는 스무 번도 넘는다.
여러 생각을 하다가 숫자를 잊어버리도 한다.
그까짓 숫자를 놓치는 게 대수인가, 그럴 자유가 있는 공간이 있어 즐겁다.
이 길을 얼마나 걸었던지 길이 반질반질하다.
나를 빼곤 이 길을 걷는 사람이 없기에 내가 맨질맨질하게 닦은 거나 다름없다.
지난 가을에 처음 낙엽이 떨어져 마를 때는 한동안 사각사각 소리를 내다가
지금은 조용하다.
내 발걸음에 눌려서 다져진 것이다.
얼마 전 건너마을에 사는 노인회장 부인을 마주친 일이 일년 동안 유일하게
만난 사람이다.
우리마을에 사는 동생을 만나고 이 지름길로 돌아간다고 했다.
나는 이 길을 도내리 오솔길이라 한다.
내 전용 길이나 다름없다.
그림자 긴 겨울철, 바람부는 날엔 이보다 좋은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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