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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村漫筆

귀촌일기- 보리고개(2)





어제

'보리고개'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후속으로 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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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라는 분의 얼굴을 멀리서나마 처음 뵌 건

1961년 8월 여름이었다.


5.16 혁명이 일어난지 두어 달 되는 시점으로

부산에서다.

부산의 첫 터널인 영주터널 개통식날인데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군복차림으로 참석하여 개통 테이프를 자르고

지프에 꼿꼿하게 선 채로 주행하던 동대신동 현장에

진주에 사는 까까중 머리의 중학생 한 사람도 여름방학이라 부산에 왔다가

그날사 우연히 구경꾼으로 있었는데

바로 나였다.





1966년 11월15일,

서울의 무악재 도로 확장 공사가 준공되었다.


서대문에서 영천을 지나 홍제동,홍은동,녹번,불광동으로 넘어가는

무악재 고개를 20 미터나 깎아 낮춘 공사를

불도저 시장으로 불리웠던 김현옥 시장이 단숨에 해치웠는데

그 준공식에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하여 고갯마루에

'무악재'라는 친필 표지석을 제막했던 것이다.


당시 나는 대학 재수생으로 콩나물 시루 만원 버스로

광화문의 대성학원을 오가는 불광동 종점 인근의 대조동에 살고 있었으므로

먼짓길 차창 너머로 무악재 공사 현장의 진척도를 매일같이

샅샅이 낱낱이 알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 정도 공사 준공식에 국가수반이 일일이 참석하겠냐 하지만

당시와 지금을 한마디로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혁명이냐 정변이냐 쿠데타냐, 산업화냐 민주화냐

해묵은 논쟁은 배부른 소리다.

 

6,70 년대 불도저 소리를 밤낮으로 들으며

조국 근대화를 기치로 내건 경제 개발이

'보리고개'를 몰아낸 것 만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