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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하신다구요?

귀촌일기- 소근진성 귀거래사






우리집에서 차로 불과 30분 남짓 거리의 소근진성을

참 미안한 마음으로 찾았다.

내 나름의 우선 순위에 밀려 귀촌 13년에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으로 시간을 앞당겨 준 건 복지관의 '문화탐방 프로그램'에서

맨먼저 소근진성이 들어있었다.

 

인근 유적지를 틈나는 대로, 오다가다, 둘러보는 일은

나 스스로 공부이기도 하거니와

귀촌인의 한사람으로 이 고장에 대대로 살아온 선조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는 생각에서다.


소근진성에 대해 알려진 일반적인 상식 뒤에 가려져 있는

어떤 의미를

나의 시각으로 조명해 보았다.






소근진성 성벽 아래는

거침없는 해풍에 하염없이 소리내어 부대끼는

조릿대만 무성하더라.


누가 살풍경하게 뚜껑을 덮었는지...

장졸들이 길러 먹었던 저 우물은

그 시절 민초의 곡절을

알고 있으렸다.


게꾹지도

저 우물 물로 끓였을 터.




 

고려조가 왜구 때문에 망했다 하리만큼 麗末 朝初는

왜구의 분탕질이 극심했다. 

 

왜구의 노략질을 방어하기 위해

1467년(세조13년) 오근이포라 부르던 이곳에 소근진성을 설치하고

당진포만호, 파지도만호, 안흥량만호를 관할하는

좌도수군 첨절제사를 파견하였다.

 

1514년(중종9년)에 이르러 둘레 2.165척, 높이 11척의

진성을  축조하기에 이르렀다.


동헌을 포함하여 내아, 급창청, 장청의 건물은 550년이 지난 오늘날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리포 해변가 '세심각'에 간신히

명맥만 남아있는데 옛 성터에는 석축 뿐,

이끼 묻은 기와 조각 하나 없었다. 












지금 태안읍 사무소 옆에는 옛 목조 기와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 중에서 제일 큰 건물이

선시대 태안현의 동헌으로 사용하던 '목애당'인데 

1894년 동학 농민혁명 때 불에 타 소실되자,

1904년 '소근진성'의 관아의 여러 건물을 헐어다가 

'목애당'을 중건하였던 것이다.

 

목애당을 짓고 남은 일부 재목은

1919년 '소원면 사무소'를 지을 때 활용하였는데

1964년에 소원면 사무소를 신식 건물로 다시 짓자 또 다시 해체하여, 

1965년 만리포 해수욕장 뒷편에 옮겨다 지어 '세심각'이라

이름하였다.



                                                                              소원면사무소


세심각은 '공무원 하계수련장'으로 활용하다가,

만리포 해수욕장이 날로 번성하자 여름 한철 '이동 군청'이다가, 

   2008년부터 '사랑의 도서관'이 되었다. 

                     








1965년 세심각을 지을 때 상량문인 듯.








어느 대학 교수님의 예술적 감각으로 리모델링했다는  

세심각.

 

유리 외벽과 기와 지붕의 외관은 아무리 봐도

갓 쓰고 자전거 타는 것 만큼이나

생경하다.

 






세심각 옆에 최근 대형 주차장이 개설되면서 

잇따라 들어선 대형 화장실 건물이 전망을 막아버렸다. 


그 넓은 땅을 두고 주위의 경관을 무시한채 

공중 화장실을 딱 붙여 지어

볼수록 을씨년스럽고 각박하다.





안보고 모르면 그만.

생각수록 씁쓸한 건

왤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