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삿꾼의 일상이야 어제나 오늘이나 엇비슷하다.
아침밥을 먹자마자 밭으로 '출근'이 어제보다 오늘은 빨라졌다.
아침이슬이 갈수록 우심해지는 걸 보니 마음이 급해진다.
두 이랑째 고추밭을 정리했다.
간단히 말해서 정리이지
고랑에 난 풀을 일일이 손으로 제거하고,
비닐 고추 줄을 가위로 자르거나 푼 다음, 철제 고추지지대를 뽑고,
고춧대를 뽑아낸다.
멀칭 비닐을 걷어낸다.
본격적으로 땅을 일구기 전 단계가 이렇다.
날은 더운데다 내 실력에 이 정도 분량이면
쉬엄쉬엄 하루 일감으론 넘친다.
해는 기울어 '퇴근'이 가까워오는데 집사람이 다가와
들깨 모종을 가지러 가잔다.
지금 심어두면 가을 한 철 잎들깨 따먹기에는 아주 좋다며
'00 형님' 한테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는 것이다.
집사람이 형님이라 부르며 친하게 지내는 분이다.
00형님 이야기를 집사람으로부터 간간이 전해듣는 바에 의하면
드물게 겸손한 분인 것 같다.
봄이면 우리가 나누어준 옥수수 씨앗에 종자값이라며
옥수수철에 잊지않고 갓딴 옥수수를 한자루 씩 꼭 실어다주시는 걸로 봐도 그렇다.
말이 그렇지 그렇게 하기가 쉽지않다.
두어 마장 거리를 곧장 달려가서
들깨모종을 받아 왔다.
이웃이 베푸는 호의는 제깍 받는 게 귀촌 12년에 내가 터득한
또 다른 예의이자 귀촌 예절 1조 1항이다.
모종은 해거름에 심어야 한다.
딱 좋은 시간이다.
내일 할 일을 가불이라도 하듯
부랴부랴 들깨모종을 심었다.
김장배추 심을 자리에
생각지도 않은 들깨가 한 가생이
먼저 입주했다.
백마는 가자 울고
날은 저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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