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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村漫筆

귀촌일기- 꿩바위 고갯길의 엔진톱 소리

 

 

 

 

 

 

 

 

어느날 갑자기 엔진톱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했더니 며칠을 두고 소나무를 베어내고 있었다. 마을 초입의 꿩바위 고갯길을 따라 왼편으로 길게 늘어선 소나무 숲이다. 팔봉산 등성을 오르자마자 병풍처럼 둘러선 송림 사이로 비치는 아침해를 매일같이 내가 맞이하는 그 소나무 숲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갖가지 성능과 기술을 자랑하는 화목보일러가 시골 마을을 무차별로 누비면서 푸른 산이 긴장하고 소나무 상수리나무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한번 오르면 내릴 줄 모르는 난방 기름값이 순진한 농심을 등 떠밀고 이런 구실 저런 셈법으로 오르고 또 오르는 전기료가 누진되어 빗나가는 농심을 뒤에서 부채질하고 있다.

 

얼마 전에도 도내나루 산봇길에 아름드리 소나무 두 그루가 잘린 등걸을 보았다. 아직 향긋한 송진 냄새가 주위에 맴도는 걸로 보아 톱날이 지나간지 얼마되지 않았고 사방으로 뻗어있는 뿌리는 소나무의 체온이 짚히고 맥박이 들렸다.

 

내가 보기엔 거기 장송을 잘라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장송일수록 잘려나간 그루터기는 볼수록 을씨년스럽고 생각수록 삭막하다. 이 볼썽사나운 모습을 오갈 때마다 도리없이 맛딱뜨릴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심산유곡이 아닌 더불어 사는 마을인 바에야 어쩔 수 없다하지만 속절없이 잘려나가버린 자연이 안타까워 혼자 마음을 삭였다.

 

요란한 톱소리가 자고나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금속성 기계소리를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나는 기계 톱 소리가 싫다. 몇년 전 콘파스 태풍이 이곳 태안반도 바로 머리 위를 지나며 그 좋은 수천 그루의 소나무를 단숨에 자빠뜨려 놓았다.  우리 동네도 예외가 아니어서 아름드리 소나무가 넘어져 도로를 덮치고 당산의 3백년 묵은 팽나무까지 하루 아침에 뿌러져 허무하게 나딩굴었다. 태풍이 남기고 간 상흔을 달랜 진혼곡은 아이러니하게도 한달 가까이 동네방네 귀가 따갑도록 울려퍼진 톱날 엔진 돌아가는 소리였다.

 

내가 엔진톱 소리를 싫어하는만큼 우리집에서 기르는 빽빼기(개)가 오토바이 엔진 소리를 싫어한다. 서울에서 나서 적당히 자란 다음 우리집에 온 빽빼기는 그 무슨 소싯적의 트라우마가 씌였는지 집 뒤로 오가는 오토바이 소리라는 소리는 전혀 참지못해 밥 먹다가도 뛰어나가 간섭과 참견을 하고야 만다. 오토바이 꽁무니의 따발총 소리가 나는 마후라를 낚아챌듯이 뒤따라 질주하며 한바탕 직성을 풀고서 회군한다.

 

꿩바위 소나무를 잘라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마을 반장에게 물어보았다. 눈이 오면 길이 미끄러워 눈이 잘 녹도록 햇빛을 튀워주기 위해 하는 작업이란다. 행정관청에 허가를 받아서 작업을 한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꿩이 서식하고 있다는 뜻인지 장끼 까투리 같이 생긴 바위가 자리잡고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마을 사람들은 이 고갯길을 정겨운 어감으로 꽁바웃길이라  부른다. 그동안 소나무 숲에 가려 어두운데다 잡목 덤불이 뒤덮여서 일부러 헤집고 들어가기도 성가스러운데다 굳이 확인해보는 내 발자국이 태초의 신비로움을 깨는 것같아 혼자 망서렸는데 이제사 멀찌감치서 올려다보니 도무지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지않은 커다란 바위가 있긴 있다.

 

오르막에다 굽어돌아가는 모양새를 갖춘 고갯길이라 함박눈이 내리고 게다가 설녹아 얼어붙기라도 하는 날엔 위험하기는 하다. 겨울이 깊어가기 전에 일찌감치 미끄럼 방지 모래주머니를 길가에 적당한 간격으로 몇포 쌓아두는 일이 해마다 읍사무소에서 내놓는 대비책일 뿐 오가는 사람이 알아서 조심하는 수 밖에 없다는 걸 십년 가까이 겪어봐서 나도 안다.

 

마당에서 바라다보면 동쪽으로 팔봉산이 휑하리만큼 시원하게 뚫였다. 고갯길을 덮치듯이 서있던 키큰 소나무들이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영원히 내마음에 감추어두었더라면 좋았을 꿩바위 속살이 뭇세상에 드러난 것도 안쓰럽거니와 하루아침에 느닷없이 잘려나간 소나무들이 갈수록 눈에 아롱삼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