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내내 거실 앞 창가를 푸르름으로 시원하게 해주었던 박 덩쿨이 가을에 접어들면서 마를대로 말랐다. 5미터 간격의 양쪽 기둥을 타고 올라온 두 박줄기가 7월칠석에 견우직녀 만나듯 드디어 해후하는 가슴 뭉클한 장면도 연출했었다.
세월이 지나 이젠 볼썽사납다고 몰인정하게 걷어낸다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서, 한편으로는 이것도 가을의 정취다싶어 지난 여름의 잔해를 쉽사리 정리하지 못하고 미뤄왔다. 오른쪽 기둥의 박은 제법 튼실하게 하나 열렸으나 왼쪽 박은 두어개 꽃이 피는가 하더니 박이 되다말다 끝내 무소식이었다.
드디어 오늘 단안을 내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작업을 중단했다.
왼쪽 기둥으로 올라온 박 줄기 머리에 앙증맞은 새끼 박 하나가 달려있었다. 박은 새파랗게 살아 있었다. 마른 것 같아도 마르지 않았다. 밑둥의 큰 줄기는 튼튼했다. 그에 비하면 박이 이미 커버린 오른쪽 박 줄기는 완전히 말랐다.
마땅히 해야할 과제, 하지않으면 안될 임무가 아직 남아있기에 왼쪽 박 줄기는 마냥 시들어 갈 수가 없었다.
'歸村漫筆'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귀촌일기- 낙엽...가을이 여기 있다 (0) | 2013.11.05 |
---|---|
귀촌일기- (태안 와룡 상경기)이젠 타향, 서울은 피곤하더라! (0) | 2013.10.30 |
귀촌일기- 농부의 일상, 김 매고 개똥쑥 말리고 (0) | 2013.10.16 |
귀촌일기- 시누대,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0) | 2013.09.13 |
귀촌일기- 충청도 일기예보 보는 법,밤새 비가 내렸다 (0) | 2013.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