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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村漫筆

(歸村漫筆) 목욕탕 이야기...공중도덕과 '파리의 연인'

 

 

 

 

1.

오늘 오후, 읍내 목욕탕을 들어서니 건너편이 야단법석이었다.

중학교 1,2년생 쯤 되는 또래들 예닐곱 명이 온탕 냉탕을 오가며 마치

동네 풀장 온 것처럼 첨벙거리고 편을 갈라 물싸움까지 하고있었다.

 

어른들 서너명이 있었으나 이를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보다못해 나는 그 중에 내 가까이 있는 한 녀석을 손짓으로 불렀다.

 

"공중도덕, 학교에서 배웠지? 한번 실천해봐. 알았지?"

"............."

이 녀석은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갔다.

 

녀석들끼리 머리를 맞대 잠시 쑥덕쑥덕 하더니 장내는 이내 조용해졌다. 

 

나는 혼자 생각했다.

'그래, 이 녀석들아, 오늘 내 말 들어줘서 고맙다.'

 

 

 

 

2004년 6월, 태안에 집을 지을 당시의 사진들이다.

 

 위: 지붕의 기와 공사

                 아래: 공사중에도 상치를 심었다.

                             귀촌의 마음이 앞서갔다.

 

 

 

 

2.

오늘의 목욕탕 광경을 보며 9년 전 어느날을 생각했다.

 

당시 히트 중인  '파리의 연인' 주제곡이 내 핸드폰 컬러링이었다.

파리의 연인이 울릴 때마다 옆에서 듣고있는 사람들은 최신 유행의

내 음악감각을 하나같이 칭송해 마지않았다.

 

그 때가 마침 여기 태안에 내려오기로 하고 한창 집을 짓고 있을 무렵이었다.

줄줄이 공사판이 이어지니 서울서 출퇴근 할 수 없을 바에야 사우나

찜질방이 안성마춤이어서 서산의 금강산 보석사우나를 내집 드나들듯

애용했다.

 

그 어느날, 수면실에서 자다가 보니 머리맡에 놔둔 핸드폰이 사라졌다.

공중전화기로 달려가 내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았으나 신호는 가는데

받질 않았다.

 

얼마 전에 바꾼 LG 신형이어서 되찾기로 작정을 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여 이런저런 절차를 거쳐 오후에 분실된

내 핸드폰으로 전화를 받은 상대방의 통화목록을 입수했다.

 

심증이 가는 몇군데를 골라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자주 통화를 한 곳중에 하나가 결국 '그 녀석'의 집이었다.

펄쩍뛰는 '그 녀석'의 엄마를 설득하여 중학교 2년생인 '그 녀석'과 가까스로

통화를 할수 있었다.

 

"내 핸드폰 돌려줘야지."

"........"

"태안 버스터미널 앞에 LG텔레콤이 있어. 거기 맡겨놔줘."

 

이렇게 해서 분실 사흘만에 회수했다.

그 녀석이 사흘동안 내 핸드폰을 얼마나 열심히 이용했는지 각종 다운로드,

게임 등으로 유료 사용금액이 14만원이었다.

 

핸드폰 컬러링도 '파리의 연인'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나는 '파리의 연인'을 바꾸지않고 핸드폰 수명이 다할 때까지 그대로 썼다.

결과적으로 핸드폰 컬러링 한번에 14만원이 든 셈이다.

 

9년이 지난 지금, 중학교 2년생이던  '그 녀석'은 어딘가에서 사회 초년병,

청년이 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