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덥다 하면서 눈 깜빡할 사이에 입추가 지나갔다.
김장용 배추, 무 밭갈이도 곧 해야한다.
이런저런 월동준비에 슬슬 맘이 급해진다.
우리 동네 건너 마을인 어은리에 사는 함 사장이 해질 무렵에 퇴비를 싣고 왔다.
미리 부탁을 해두었던 우분이다.
따가운 햇살이 수그러들기 전인 데 약속을 지킨답시고 육중한 15톤트럭을 몰고 온
것이다.
보름 전이다.
읍내 반도정형외과 병원에 물리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환자복을 입고 있는 함 사장을
우연히 만났다.
집에서 기르던 소에게 들이받쳐 갈비뼈가 부러져 사흘 째 입원 중이란다.
"우짜다가, 어쨌길래 저거 소에 받히는거요?"
나는 웃으면서 심통궂게 묻고 다시 물었다.
"그리 됐슈,허허."
계속 어정쩡하게 말꼬리를 흐리며 쑥스러워하는 얼굴 표정이 어느 코미디언도 흉내낼
수 없는 백만불 짜리여서 나를 다시 웃겼다.
함 사장은 9년 전에 우리 집을 지을 때 상옥 토취장에서 덤프 트럭으로 흙을 날라다준
인연으로 이런저런 모임에 어울려 반갑게 만나는 사이다.
기다렸던 퇴비다.
퇴비를 밭 가장자리에 부려놓고 보니 부자가 된 듯 한결 맘이 넉넉하고 든든하다.
이 정도 양이면 이태정도 두고두고 충분하다.
함 사장 말마따나 아주 맛있게 잘 발효 숙성이 된 거라 지금 당장 밭에 쓰도 된단다.
아닌게 아니라 쏟아붓는 순간 단냄새가 피어오른다.
한편으로 주인을 들이받은 소가 생산한 퇴비라는 생각이 스쳐 나혼자 픽 웃었다.
농사는 거름이 좋아야 한다.
거름이 좋아야 흙이 살고 흙이 살아야 농촌이 산다.
폭염이 조금 수그러들면 먼저 매실나무부터 거름을 넣어야 한다.
매실을 따고 이내 추비를 했어야 했는데 그 때를 놓쳤다.
농사는 미래다. 항상 계절을 앞서간다.
'귀촌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사는 장사, 영업은 영업, 단골은 단골- 팔봉산 스타일 (0) | 2012.08.12 |
---|---|
반가운 손님같이 오늘 오신 비는... 참 예쁜 비 (0) | 2012.08.11 |
입추,말복에 또 물 주기 시작하다 (0) | 2012.08.08 |
대추나무 시집 보냈더니... 대추 풍년예감 (0) | 2012.08.06 |
용의 승천- 우리 동네에 용왕님이 납시다 (0) | 2012.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