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과거

장화 패션-상암동의 추억

 

 

수색역 철길 밑으로 상암동으로 가는 땅굴같은 터널이 있었다. 어른 키가 닿을락말락 백미터가 넘는 굴을 지나가자면 위에서 사시사철 물이 뚝뚝 떨어졌다. 희미한 백열등이 듬성듬성 달려서 긴장한 발길을 비춰주었다. 질척거리는 발밑은 예측하기가 어려워 물웅덩이에 빠져 양말이 젖기 일쑤였다.

구두를 닦을 필요가 없었고 닦는 사람도 없었다. 구두는 들고 장화를 신고나와 수색역 앞 자전거 가게나 과일 아줌마한테 장화를 맡기고 출근하는 총기있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그래서 상암동 사람들은 마누라없인 살아도 장화없인 못산다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여름철 한강 물이 강둑에 넘치면 땅굴도 물속으로 사라졌다.  태풍이 지나가는 일년에 한두 번 집으로 가는 길이 끊겨 난감했다.

 

 

 

나는 1970년대 초 상암동에 3년여 살았다. 수색역 땅굴은 상암동 사람들의 생존이 걸린 유일한 통로이자 출입문이었다. 

화전을 지나 일영,송추로 가는 교외선 옆 수색과 상암동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애환어린 한 묶음이다.  지금,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있을가. 과연 그 땅굴 터널이 지금 있기나 있나.

 

 

상암동에서 서쪽으로 구세군 수양관을 돌아 한강 쪽으로 나가면 난지도였다.  어느날부터 갈현동 쪽으로 가던 쓰레기 차들이 방향을 틀어 먼지를 풀풀 내며 드나들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거대한 쓰레기 매립장이 완성되었다. 쓰레기 더미에서 불이 나 시커먼 연기가 하늬바람을 타고 서울 하늘을 덮었다.

드디어 한강이 하늘공원 위로 흐르고 월드컵 축구장이 들어섰다. 이제 상암동은 치솟은 글로벌 최첨단 구조물 스카이라인 아래 깔렸다. 상암동에 장화는 없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년 365일을 내가 벗지못하는 장화가 느닷없이 북쪽에서 장화패션이라네. 게다가 아내 팔아 장화 산다고?  마누라는 그제나 지금이나.

 

 

 

 

 

 

 

 

 

 

 

 

 

 

 

 

 

 

 

 

 

 

 

 

 

 

 

 

 

 

 

 

 

 

 

 

 

 

'과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 권의 책  (0) 2011.10.19
장기 한판 어때요  (0) 2011.09.12
LG의 럭키세븐비누  (0) 2011.03.14
40년의 수채화  (0) 2010.11.14
의자(2) 인간적인 인간  (0) 2010.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