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버갯속 영감 교유기(交遊記)

귀촌일기- 밀주,해삼,동네만보

 

오전에는 박 심을 구덩이를 파고, 점심을 먹고선 감자 싹을 터주었다. 하우스 안의 박

모종은 어지간히 자라 제자리에 심어줄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감자는 멀칭비닐을 뚫고

나올 기세여서 오늘 처음 가위로 잘라 숨통을 내주기 시작했다.

 

 

 

일과 운동을 구분하라는 어떤 분의 권유가 새삼 생각나 오랜만에 산보길을 나섰다.  앞산

소롯길을 거쳐 간사지 농로를 지나 안 마을을 거쳐오는 '도내리오솔길'은 빠른 걸음으로

보통 30분 쯤 걸린다.

 

 

"밀주 한잔 하고가슈."

버갯속 영감 여동생이 발길을 세운다. 광태네 모친과 된장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밀주란 집에서 담근 쌀술로 단속 대상이 되던 그 시절의 말습관이다. 세 사람은 햇살이

오목한 담부랑 밑에 퍼질러 앉았다. 광에서 갓 꺼낸 묵은지와 생굴이 밀주의 안주로

안성맞춤이다.

 

 

"해삼 가져와 볼게유."

개막이 그물에서 잡았다는 해삼이 짚신짝 만 할 뿐아니라 등짝이 우둘투둘 누런게 몇년

자랐는지 알 수 없다. 

"우리 신랑두 이게 뭔가 했대유."

결혼한지 사십년이 돼가도 남편을 신랑이라 하는 말씨가 신선하다. 그런 신랑이 그물에

해삼이 든 건 처음이라고 했다.

 

 

"이 좋을 때 약빨리 들어유."

숭덩숭덩 즉석에서 썰은 해삼이 질기긴 했으나 그런대로 잘 먹는 나를 보고 광태 모친이

한마디 거들었다.

 

봄이 무르익은 한나절의 동네 만보(漫步)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