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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림만의 하루

 

 

 

 

 

 11월 9일은 조금인데다 아침 아홉시가 물이 써기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열시께 도내호는 도내나루를 떠나 쾌속으로 물살을 갈랐다. 올 가을들어 첫 출조였다.

이웃 박 사장으로부터 전날 저녁 늦게 연락을 받았다. 박 사장인들 이곳저곳 바섬 다니고

가을걷이를 이제야 대충 끝내 여유가 생겼다.

허기야 이맘때 이슬내려 이슥하면 바다장어(아나고) 낚시에 마음 설렌다.

 

아침에 나는 태안 조석시장에 나가 잇갑 미꾸라지를 1키로 사왔다. 길도에 낚시가게에 들러

채비도 갖추었다. 여하간 한낮엔 우럭, 해 지면 아나고가 목표다. 돌아오는 시간은 알 수

없다. 조황이 큰 변수다.

 

 

 

 

 

 

바람 잔잔 하늘은 쾌청. 날릴새라 모자를 눌러가며 십여 분을 달렸다.

 

먼저 잡은 두어마리 우럭에 박 사장이 회를 떴다. 날렵한 손길은 평생 익고익었다. 마개를

힘차게 돌려 부딪쳐 소주 한잔을 나누었다. 상큼한 초장에 뭉턱한 회 한 점이 입안에 감미롭다. 

'그려, 이 맛이여.'

감탄이 절로 나온다. 중천의 햇살이 갑판에 딩굴었다.

 

견지로 올라오는 바쁜 입질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쌍걸이도 여러번 있었다.  라면 요기는

두시가 넘었다.

 

 

 

가로림은 도내 뒷 바다이다. 팔봉산이 가깝고 구도항 건너 우리 동네도 한 눈에 들어온다.

이웃 동네 사람들도 보였다. 소리질러 조황의 정보도 서로 나누었다. 청사포 갯바위에 꾼들이

진을 쳤다.

 

썰물 조류에 시동을 끈 배가 저절로 밀려내려갔다. 물살이 빨랐다. 십여미터의 수심에 밑바닥은

돌 밭이었다. 갈매기 한 놈이 하릴없이 우리 낚시 솜씨를 지켜보았다.

 

구도에서 고파도로 가는 여객선이 지나갔다.  승객이 없는 빈배도 어쩔 수 없이 가을을 닮았다.

 

 

역시 우럭 조황은 좋았다. 씨알도 씨알이려니와 사십 개(마리)는 넘었다. 장대와 박아지도

따라 나왔다.

 

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단가 호순가 이내 들물로 바뀌었다. 물살이 아침 나절관 정반대다.

바다의 밤은 한기가 들었다. 벗어두었던 겉옷을 하나 둘 껴입기 시작했다.

소주 세 병은 이미 동났다.

 

아나고 채비로 바꾸었다. 아무려나 오늘은 60짜리 뽕돌을 하나도 잃지않았다. 그만큼 일기가

순조롭다는 얘기다.

 

 

 

바지선 모랫배가 전조등도 요란하게 어둠을 뚫고 지나갔다.

 

손전등으로 일일이 비추어 미끼를 갈아끼웠다. 아나고는 우럭보다 입질이 예민했다. 역시

묵직했다. 낚아챌 때 휘감는 손맛은 아무래도 월척 붕어가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여덟시가 넘자 안개가 깔리기 시작했다. 삼년 전 이맘 때다. 갑자기 나타난 모랫배 뱃고동에

놀라 허겁지겁 대피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며 다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걸 보면 바다 안개는 무섭다. 미련없이 서둘러 장비를 걷었다.

 

아나고는 다섯 개에 그쳤다.

열 한시간의 바다낚시였다.

 

 

 

 

 큰 놈은 손질을 해서 말리고 나머지는 구이와 매운탕이 기다린다. 삐들삐들 말려 쉬엄쉬엄

이러저런 반찬이 된다. 말린 우럭으로 끓인 우럭젓국은 게꾹지와 더불어 태안을 비롯한 

이 지방의 토속 음식이다. 나는 아직 별론데 맛들여 익어간다. 왕소금 뿌려 구운  아나고는 

그저 그만이다.

 

그러고 보니 갯가 몇년에 이놈들 다루는 내 칼 솜씨가 보통 아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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