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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갯속 영감 교유기(交遊記)

귀촌일기- (24) 잡초

잡초                                                                                                            (24회)

 

  오늘은 그야말로 화창했다. 워낙 지루한 장마였다. 비 한 방울 없는 마른장마는 관두더라도 올 장마는 비가 유달리 잦았다. 유월부터 달포가량 주중과 주말에 정해진 규칙처럼 비가 내려 갠 날이 없었다. 해가 쨍쨍 내리 쬐도 될 가 말 가 할 때 하늘 때문에 가을걷이 걱정이 태산 같았다.

  “웬 놈의 비가 이렇키너 온다나. 허허.”

  마당에 들어서면서 버갯속 영감이 큰소리로 말했다. 지긋지긋했던 장마가 걷힌 기쁨이 지난 원망으로 되살아났다. 영감은 모처럼 나온  햇살이 신기한 듯 하늘을 새삼스레 쳐다보았다.

  “어이구, 허리야.”

  영감은 현관 계단에 아무렇게 걸터앉았다. 자연스런 허리타령이 갠 날씨와 더불어 정다웠다.

  “어이구, 저 가생이. 풀 좀 뽑어.”

  영감은 마당 가장자리에 난 잡초 무더기를 보았다. 영감 눈에는 집 주위의 잡초가 먼저 들어왔다. 동네사람들의 한결같은 성화에 귀가 송신했는데 영감이 지나칠 리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잡초는 긴 장마 덕을 톡톡히 보았다.


  나는 마당의 잔디에 꽤 정성을 쏟았다. 버갯속 영감이나 동네사람들의 성화를 만회하는 길이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잔디밭 돌보는 일이 첫 일과가 되었다.

  잔디밭 마당은 나에게 소박한 꿈이었다. 잡지나 영화에서 잔디를 가꾸고 있는 장면이 나오면 왠지 마음이 설렜다. 오십년 묵은 꿈이 도내에 와서 비로소 이루어졌다. 호스를 늘어뜨려 물주는 일이 무엇보다 즐거웠다. 갓 깎은 잔디에서 나는 풋풋한 냄새는 더더욱 좋았다.

  다들 농사에 여념이 없는데 나 혼자 잔디에 매달려있는 것 같아 때론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물이 상수도라 오가는 사람들이 없는 시간을 골랐다.


  며칠 전이었다. 옆집의 배 아주머니가 잔디를 손질하고 있는 나를 보고 말했다.

  “돌가루 마당을 하지 그랬씨유. 곡식 말리게유.”

  남다른 충청도 억양이 차단지 같았다. 옆 집 마당은 그야말로 돌가루 마당이다. 빈틈이라곤 없이 레미콘 시멘트를 들어부었다. 아주머니 말대로 고추나 콩, 마늘을 말리고 타작을 하는데 다시없는 작업공간이었다. 그물이나 어구를 손질하고 추울 때는 감태도 널어 말렸다.

  “허긴 그렇네유.”

  나는 어정쩡하게 대꾸를 했다. 아주머니는 내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쏜살같이 자기 갈 길을 가버렸다.

  

  얼마 전에 배 선생이 무슨 이야기 끝에 나한테 푸념을 했다.

  “애들 날 때마다 기념식수를 했슈. 저 가생이에 주욱 심어져 있었씨유.”

  “그래예?”

  “근디, 다 파버렸씨유.”

  “예? 누가?”

  “허허.”

  배 선생은 허탈하게 웃었다.

  창고 옆에 서있던 아름드리 은행나무도 최근 어느 날 사라졌다. 남편이 오토바이 사고로 인천에 있는 병원에 장기 입원한 사이에 아주머니가 손수 베어버렸다. 은행잎이 성가시고 그늘진다고 몇 번 불평을 하더니 드디어 결행을 했다.

  앙상하게 남은 그루터기가 우리 집에서 빤히 보인다. 돌가루 마당에 은행나무마저 사라졌으니 눈길이 삭막했다.

  읍내 출입이 잦은 배 선생을 제치고 밭농사는 아주머니가 주력했다. 말린다고 널어놓은 곡식 위에 시나브로 은행잎이 떨어졌다. 농가라면 잔디밭보다 다목적 돌가루 마당이 단연 쓰임새가 있다. 한 시가 바쁜 농사철에 배 아주머니의 결단은 옳았다.

  나는 배 선생 댁의 해프닝을 보면서 낭만과 실용의 차이를 읽었다. 사 남매 출생에 빠뜨리지 않고 기념식수를 한 남편과 어느 날 순식간에 파버린 마나님과 대비가 되었다.

  수십 년 된 은행나무를 단숨에 베어낸 건 아무려나 대단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팔을 걷어붙이는 도내 아줌마들의 강단이 오늘의 도내를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허허, 그래두 잔대미는 잘 자랐슈.”

  버갯속 영감의 평가였다. 잔디에 기울인 노력을 영감이 잠깐 알아주었다.

  여름이 가까워지니 잔디는 어우러졌다. 푸성귀에 주다 남은 비료를 뿌려주거나 공사 끝에 쳐진 모래를 떼 밥으로 보충해주었다. 자라는 위치에 따라 품새가 달랐다.

  잔디 깎기로 건사할 만큼 마당이 넓지 않아 날이 긴 전정가위로 대충 대충 깎았다. 깎은 자리가 고르지 않아 어떨 때는 마치 바리캉 기계독이 올라 얼기설기한 빡빡머리 같아서 보기에 상그러웠다.

  장마 통에는 눈 깜박할 사이에 이런 저런 잡초가 가위바위보하자며 덤벼들었다. 보일 듯 말듯 발갛고 파란 꽃눈이 달린 여린 풀들도 있었다. 이런 야생화를 뽑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가장 애를 먹이는 놈은 클로버였다. 간직해 왔던 클로버의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깨져 나는 허탈했다.


  영감은 피우던 담배를 손가락으로 질끈 눌러 끄며 일어섰다. 무엇을 보았는지 영감은 뒷짐을 지고 장독대 쪽으로 어깆어깆 걸어갔다.

  “어이구, 구텡이 요것 보게.”

  영감의 말이 날카롭다 싶더니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내가 좀 뽑아줄 거이께잉.”

  동시에 영감은 웃자란 쑥 한 무더기를 휘어잡았다. 설컹 뽑아 들었다.

  “.............”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영감은 쪼그린 자세로 계속 전진했다. 마당 경계를 따라 손바람을 내며 잡초를 건져냈다. 두 손이 어떻게나 민첩한지 솔개가 먹잇감을 낚아채는 것 같았다. 방아깨비가 날고 버마재비 한 쌍이 놀라서 튀어 올랐다.

  이런 적은 더러 있었다. 그 때마다 나는 영감을 열십자로 가로막으며 가까스로 말렸다. 아무려나 여든 노인으로부터 잡초 뽑는 신세까지 질 수는 없었다.

  오늘은 영감이 아예 선수를 쳤다. 틈을 주지 않고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바람에 미처 손쓸 겨를이 없었다. 오늘은 작심을 한 것 같았다. 옆에 멍하게 서 있는 나를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손바람이 갈수록 거셌다. 영감의 말과 행동에서 일찌감치 잡초 씨를 말렸다. 영감에게 잡초는 적이었다.

  “뵈는 쪽쪽 말이여. 요렇게 해여. 허허, 요거 보라니께.”

  영감은 흥이 났다. 잡초는 보이는 족족 없애야한다는 한마디에 나는 주눅이 들었다.

 

  나는 감자 밭에서 이미 혼이 났다. 처음에는 열심히 잡초를 뽑았다. 그게 아니었다. 애를 태우면 태울수록 잡초의 기세는 등등해졌다. 끝없는 악순환이 고리에 고리를 물었다. 아무데나 악착스럽게 닦달을 하거나 깡그리 소탕할 것까지야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겐 농촌 생활이 굳이 잡초와 겨루어서 이기고 지는 승부의 세계는 아니었다. 채소 텃밭이나 아래 감자 밭과는 달리 어지간한 잡초는 그대로 두었다. 몇 군데는 가지치기를 해가며 일부러 가꾸었다.

  우리 집 둘레는 야생초들의 경연장이다. 서로 다투다가 어울려 자란다. 저들끼리 절로 타협의 공간이 되었다. 개나리가 있으나 마당을 지나 축대 밑으로 밀려가는 흙탕물을 건장한 잡초들이 버텼다. 마당 끝자락 두어 군데는 아직 덜 자란 유실수를 대신하여 쑥과 억새 무더기가 균형을 잡아주었다. 자연 속에 자연이 따로 없는 자연 그대로였다.


  버갯속 영감의 시범은 가속도가 붙었다. 쑥, 엉겅퀴, 개비름, 쇠비름, 클로버 그리고 쥐손이풀이 영감의 손아귀에서 남아나지 않았다. 좀깨잎, 피, 강아지풀, 질경이를 잡히는 대로 사정없이 내동댕이쳤다.

  심지어 어린 뽕나무까지 휩쓸어 뽑아버렸다. 어디서 씨가 날아들었는지 뽕나무 몇 그루가 평석 근처에서 자랐다. 나는 어서 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끔 물까지 주었다. 나는 아연 실색을 하고 말았다.

  “아이고, 고마 앵가이 해 두이소.”

  내말이 투박해 졌다. 

  “어허, 요놈들이 커봐. 그늘지구. 작물이 되남?”

  영감의 반응은 간단명료했다. 공연히 투정만 부린 나는 머쓱했다.

  드디어 대문가에 이르렀다. 나는 영감의 앞을 막아섰다. 진즉부터 적당히 그 정도에 나는 마지노선을 정해 두고 있었다. 그러나 가속도가 붙은 버갯속 영감을 붙들어 맬 수가 없었다. 이미 오른손은 잡초 한 무더기를 움켜잡았고 왼손은 비키라며 나를 밀쳐냈다.

  “혈 때 허자니께. 낭중엔 못혀.”

  잡초 앞에서 영감의 행동강령은 오로지 전진이었다. 나는 전차에 받친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말이 대문이지 문도 없고 문패도 없다. 마당에서 동쪽 편으로 손수레가 드나들 정도의 공간이 대문 구실을 한다. 팔봉산 기슭에 간벌을 하다 널브러져 있던 소나무 둥치 하나를 소풍 길에 주워왔다. Y자로 잘라 땅에다 꽂은 다음 우체국에서 사온 우편함을 달아 놓으니 그나마 대문 형색이 났다. 

  대문 앞쪽 길은 옆집으로 이어지는 통행로이다. 솔밭너머 밭에 문 반장이 가끔 경운기를 몰고 오갈 뿐 이렇다 할 통행이 없다. 비가 많이 올 때는 사래가 길고 경사가 진 위쪽 밭에서 고랑을 타고 내려오는 흙탕물이 여간 아니다. 잡초 덤불의 뿌리가 합세해 흙이 패이지 않도록 막아준다.


  “어이구, 이 씨들 얼만지나 생각혀봐. 이러컴 지저서 워쩔거여.”

  영감은 혼자말로 웅얼거렸다. 영감은 앉은 자세의 반경을 최대한 유지하며 계속 앞으로 나갔다. 개비름 한 무더기가 영감의 손아귀에서 요동을 쳤다. 

  “허허, 요거 봐. 조선 천지에 못쓸 풀이 요거여.”

  버갯속 영감은 보란 듯이 며느리밑씻개 한 다발을 가볍게 걷어냈다. 어쩌다 팔뚝이나 장딴지를 스치면 가렵고 아려서 며칠 동안 고생을 했다. 같은 잡초라도 이런 놈은 아무데나 기어오르고 설쳐대서 덧정이 없었다.

  나는 버갯속 영감이 맨손이라는 걸 알았다. 들고 있던 목장갑을 권했다.

  “어허, 장갑 필요 없슈. 갑갑만 허다니께.”

  바로 퇴짜를 놓았다. 영감은 뒤틀린 허리춤을 슬쩍 고치더니 다잡아 앉았다. 잡초 한 움큼을 당겼다 놓았다하는 폼이 잡초를 뽑는다기보다 잡초가 영감의 손에 찰싹 붙어있었다.

  “눈치 빠른 놈은 내빼기라도 하지. 얼쩡거리다 도망도 못가고... 아이구... 이 지경인데 이러큼 빨리 자라기는...”

  영감의 손놀림에 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허리춤까지 자란 피는 어지간히 힘을 줘서는 뽑히지 않았다. 그러나 버갯속 영감이 틀어쥐고 리듬감을 주어 살짝 잡아당기니 순간적인 탄력에 마치 화답하듯이 딸려 나왔다. 나머지 자잘한 잡초들이야 좌우를 두 손으로 휘저으니 말끔히 정리가 되었다. 사납던 잡초무리가 영감 앞에서는 어리광을 부렸다. 모질 디 모진 쑥 덤불도 영감 손 안에서 노리개였다. 허리 타령을 자장가 삼던 영감에게 어디서 저런 힘이 솟아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좌충우돌 이리저리 누비던 버갯속 영감의 손길이 일순간 멈췄다. 영감은 상체를 앞으로 당겨 허리를 펴며 일어섰다. 잡초와 전쟁에서 승리를 확인한 듯 영감은 가슴을 활짝 열었다. 

  “요렇키 허는 거여.”

  “..............”

  나도 모르게 체머리를 흔들었다. 나는 몇 번 심호흡을 했다. 그제야 영감에게 미안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수고하셨습니더.”

  나는 겸연쩍게 말했다.

  “어이구, 어이구.”

  영감은 아리송한 감탄사를 연발했다. 

  “잡초도 별 놈이 다 있네예. 손만 대면 ‘저요.’ 하고서 기다렸다는 듯이 나오는 놈이 있는가 하모... 우쨌든간에 잡초는 뻐기고 끈질기야 잡초 지예.”

  나는 별 생각 없이 몇 마디를 나열했다.

  “허허, 잡초는 잡초여, 볼게 없다니께.”

  버갯속 영감은 이 한마디로 마무리 지었다. 농사는 잡초와 벌이는 끝없는 전쟁이자 농작물은 겨우 건져낸 전리품이었다. 

  ‘잡초는 잡초.’

  버갯속 영감이 내린 결론에 나는 가슴이 답답했다. 그 순간 영감은 멀쩡한데 내 허리가 아팠다.

  영감은 다시 바쁘게 움직였다. 영감이 아까 지나온 뒤를 따라가며 여기저기에 던져두었던 잡초 무더기를 한군데로 모았다.

  “우궂허더이 지대로 되었슈. 허허.”

  영감은 수북하게  쌓인 잡초더미를 느긋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예전엔 요게 다 거름이여. 이보다 더 좋은 기 있깐?”

  영감이 시범은 끝났다. 

  “어이구, 허리야. 아무 것도 못혀.”

  비로소 버갯속 영감으로 돌아왔다.   

  

                                                                                                                                 계속 연재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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