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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갯속 영감 교유기(交遊記)

귀촌일기- (3) 상량

 

상량                                                                                                                             (3회)

 

  도내에 새 집을 짓는 게 오랜 만이어서 동네 사람들은 관심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오다가다 현장을 비집고 들어와 이것저것 물어보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경운기가 돌다 걸리겠시유. 집터가 너무 길가에 붙었시유.’

  ‘뒤에 똘강부터 얼릉 해야겠슈. 즈거 집 물은 즈거가 받아야지유.’

  ‘수도가 밑으루 지나 가는디 포크레인 조심 허슈.’

 

  ‘오물이 셍가시면 되겄슈. 젠작부터 바람에 안 널러가게 해야지유.’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한마디를 남기고 지나갔다. 그럴 때마다 은근 슬쩍 나를 긴장시켰다. 들어보면 어느 하나 틀린 말은 없었다. 

 

  어느 듯 오월이었다. 집을 짓기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삼월 초에 기초를 하고 사월에 조적(벽돌쌓기)을 마쳤다. 이제 지붕을 올리면 집의 모양새가 갖추어질 단계에 이르렀다. 게다가 두어 번 스쳐간 비바람에 놀란 뒤라 닥쳐올 장마가 걱정스러웠다. 큰비가 오기 전에 뚜껑은 덮어야 한다며 주위에서 더 안달을 했다.

  집짓기에 제법 이력이 난다 싶었더니 상량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로서는 처음 짓는 집인데다 무엇보다 그동안 공사판 옆을 오며가며 눈을 마주쳤던 터주민들의 정서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주민들의 얼굴도 익힐 겸 때마침 오가는 이들에게 상량을 하는구나하는 정도의 인사치레를 하기로 했다.

 

  온 동네가 왠지 부산스러웠다. 개나 고양이도 돕는다는 농번기였다. 경운기를 운전해갔던 사람이 어느새 콤바인으로 바꿔서 몰고 지나갔다. 주말이면 도회지로 나가있던 자녀 가족이나 일가친척들이 집집마다 모여들었다.

  안도내는 한 가지 일이 더 있었다. 농사일 사이사이에 바지락을 긁거나 낙지를 잡았다. 바다를 둔 농촌이란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어쩌다 신난 디스코 한 곡이 온 동네를 쩡쩡 울렸다. 작업을 알리는 어촌계 안내 방송이었다. 어촌 계원들은 장구를 갖추어 재빨리 도내 나루터로 몰려갔다. 연거푸 몇 번을 듣다보니 방송만 나오면 신바람인지 봄바람인지 나도 덩달아 들떴다.

 

  들보 감으로 아름드리 통나무 세 개가 인천에서 일찌감치 들어왔다. 막상 부려놓고 보니 공사판이 꽉 찼다. 역시 들보라 바라보는 마음부터 푸짐하고 든든했다. 한편으로는 이만한 무게를 흙벽돌이 버텨낼 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며칠 동안 목수들이 달려들어 치수를 요모조모 재어가며 자르고 깎고 다듬었다. 상량을 앞 둔 마지막 작업은 순조로웠다.

  

  상량을 하는 아침이었다. 오월의 하늘은 푸르고 쾌청했다. 도목수가 상량문을 쓸 수 있도록 전동 대패로 정성들여 밀어주었다. 나는 자투리 나무에다 첫 글자인 ‘龍(용)’자를 연습 삼아 써보았다. 오랜 만에 잡아보는 붓인데도 그다지 설지는 않았다. 나는 다소 긴장을 하며 자세를 바로 잡았다. 붓에 먹물을 듬뿍 찍어 망서림 없이 써 내려갔다.


  ‘龍二00四年 五月十四日 立柱上樑龜’


  따가운 햇살이 방금 쓴 상량문 위에 내려앉았다. 나는 붓을 놓고 얼굴을 들었다. 눈이 부시다 못해 천지사방에서 때 아닌 별빛이 쏟아졌다.

  들보를 들어올리기 위해 대형 크레인 두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온갖 자재와 장비들로 공사판 안팎은 옴팍 달싹할 틈이 없었다. 목수들은 이른 아침부터 들보를 지붕 양쪽에서 받치는 마무리 작업에 열중했다. 먹줄을 퉁기며 정밀하게 다듬은 후여서 서로 끼어 맞추면 되는 일이었다. 그럭저럭 준비 작업이 끝나자 도목수가 나에게 눈짓을 보냈다. 열두시에 맞추어 상량 절차가 시작되었다.

  “엇따, 고놈 잘도 생겼네.”

  누군가가 돼지 머리에 한마디 인사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목수가 대들보를 광목으로 묶고 명태에 무명실타래를 감았다. 나는 진설해둔 시루떡과 돼지머리 앞에 막걸리를 부어놓고 절을 했다. 도목수에 이어 몇 사람이 머리를 조아렸다. 나는 실타래 매듭에 만 원짜리 몇 개를 꽂았다. 드디어 대들보를 조심스럽게 두 대의 크레인으로 달아 올렸다. 창공을 가로질러 들보는 제자리를 찾아갔다. 자리를 잡은 들보를 바라보니 이제야 집이 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허, 요런 날 워찌 탁배기 한잔 안 할 수 있는감.”

  타고 가던 오토바이를 멈추고 막걸리 한 잔을 청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이 제법 모여들었다. 나는 동네사람들과 막걸리 잔을 주고받으며 이런저런 덕담을 나누었다. 바로 그 때였다.


  “허허. 누가 썼시유?”                            

  조용히 묻는 노인이 있었다. 언제 왔는지 모르게 내 옆에 다가온 노인은 밭일을 하다 온 듯 꾀죄죄했다. 작달막한 체구에 새카맣게 그은 얼굴이었다.

  “.............”

  나는 그저 흘려들었다. 노인이라 나는 서둘러 막걸리를 권할 채비를 했다.

  “난, 술 안 먹어유.”

  노인은 앞질러 사양했다. 떡이나 먹을 음식이 있었으나 전혀 입을 다시지 않았다. 노인의 시선은 오로지 대들보에 가있었다.

  “허허, 정말루 잘 네그려.”   

 

  건성으로 하는 칭찬이 아니었다. 감탄하는 말투에는 정감이 배여 있었다. 노인이 들보에 쓰인 글씨에 관심을 갖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새삼스럽게 한 번 더 올려다보았다.

  “요샌 말이여...”

  노인은 잠시 뜸을 들였다.

  “없슈. 허허, 요긴 지대로 허네그려.”

  나는 노인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노인은 마치 자기 일처럼 흐뭇한 표정이었다. 실눈에 작은 눈매가 새삼 빛났다.

  “뉘가 썼씨유?”

  노인은 다가앉으며 나에게 물었다.

  “제가 썼습니더.”

  “허허, 워디서 배웠시유? 보통 글씨가 아니네그려.”

  “어디다 부탁을 할 가 하다가... 그냥 한번 써봤습니더.”

  “그런디, 요런 글을 두고서 암디나 부탁하먼 되남. 즈그 집은 지가 쓰는 거이 옳어.”

  “..............”                            

  “글을 쓰는 사람이 없시유. 서산에는 있는디.”

  “그럴리가예.”

  “아뉴. 내가 행교(향교)도 가 보는디...”

  이 노인이 버갯속 영감이었다.                                       

 

 

                                                                                                                                                               4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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