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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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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일기- 홍대 앞을 간 이유, 당일치기 서울행 캔버스 일곱개를 실은 트렁크가 든든하다. 갑자기 서울에 간김에 그동안 벼르던 홍대 앞을 갔다. 폭설 끝에 땅은 질척거리고 비탈은 미끄러웠다. 거기에 단골 화방이 있다. 캔버스를 몇 개 샀다. 우연히 바라본 광경. 고가 밑에 갇힌 북한산. 바위. 눈. 보현봉인듯. 오랜만이다. 북악스카이..
다솔사 일기(7) 원효와 효당 오늘 새삼 꺼내본다. 그 때 주신 글을 007가방에 접어둔채 지금까지 그대로 있어 송구스럽다. '茶道無門'은 그렇다치고 원효대사의 금강삼매론 중의 글 -雖無切能應機說話猶如天鼓- 의 의미를 아직 나는 모른다. 당시 효당의 말씀을 듣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 기억에 남아있지 ..
다솔사 일기(6) 汝矣無門 1969年 1月30日(12.13) 木 曇後雪 열흘의 산사 생활을 끝내고 하산했다. 눈덮힌 다솔사 송림 사이로 이불보퉁이를 어깨에 짊어지고 내려왔다. '작품이 없다고 예술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김시습이, 서양에서는 조각가 자코메티가 보여주었다. 예술이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완성을 위해 다가가는 것이다. 1970年 1月31日(12.24) 土 晴 하산했다. 스무날도 못됐는데 내려가느냐고 혜담 스님이 말했다. 참는 것도 수양이라 인내가 없으면 성사를 할 수 없고 타성이 되면 대사를 이룰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상현군을 만나러 갔으나 없어 섭섭했다. 백암과 윤달군이 절 아래 추동까지 바래다 주었다. 다솔사에 오는 것도 이젠 어려울 것 같다. 69년,70년 각각 열흘, 스무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