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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의 팡세

노부부 그리고 '아내와 나 사이'

 

 

아내와 나 사이

                                 이생진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꼭 10년 전이다.  2012년 7월 12일. 태안 읍내 출입에서 돌아오는 길에 인평리에서 만났던 그림. 노부부가 걸어가고 있었다. 누굴 찾아 가시는 걸까? 딸래미집,아니면, 아들네 집? 아니면 옛 고향 찾아 나들이? 

 

마침 오늘, 소싯적 친구 최점용 군이 멀리 울산에서 카톡으로 시 한 수를 보내왔다. '아내와 나 사이'.  시인 이생진 님은 올해로 아흔 셋. 바로 이웃 고을 서산 출신이시다. 경상도에 사는 친구가 어찌 알고서... 내가 살짝 부끄러웠다.

 

 

오늘 친구가 보내온 시를 보니 불현듯 이 사진이 생각난 것이다. 노부부... 10년이 지난 지금, 아름답게 살아 계실까? 저만치 앞에 팔봉산을 바라보며 나란히 나란히 영원히 걸어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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