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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의 팡세

1974년 8월15일 해질무렵, 광화문

 

 

 

 

그 시간 나는 시청 쪽에서 광화문 네거리 세종로를 지나고 있었다. 북악산과 인왕산 쪽 하늘빛이 무궁화 꽃잎을 닮은 자색 분홍빛으로 온통 물들었다. 참 이상한 현상이었다. 바로 그 때가 육영수 여사가 운명하신 시간이었다는 걸 조금 뒤에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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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8월15일. 당시 무임소장관 비서였던 나는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29주년 광복절 기념식장에 함께 갔다가 9시 30분경 내려드리고 중앙청 4층 장관실로 돌아와 대기하고 있었다.

 

참석 요인들은 광복절 기념식을 마치고 준비된 버스로 청량리역으로 이동, 박정희 대통령이 테이프를 끊는 서울지하철 1호선 개통식에 참가하고 서울역까지 시승을 한 뒤 12시에 해산하는 일정이었기에 나로선 서너 시간 여유시간이었다.

 

 

 

9시 50분이었다. 우연히 창밖을 내다보니 마침 박정희 대통령이 탄 차량 행렬이 청와대를 나와 중앙청 앞 광장 너머 세종로 거리를 빠르게 지나갔다.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차 장충동 국립극장으로 향하는 행렬이었다.

 

 

 

10시 23분 박정희 대통령의 경축사가 남북한 불가침 조약 체결... 선언에 이르렀을 즈음... 문세광의 총탄에... 식장은 아수라장이... 흑백 테레비 화면은 끊기고... 다시 박정희 대통령 등장에 안도했다. 그러나.

 

 

 

11시로 예정되었던 청량리역에서 서울 지하철 개통식은 박정희 대통령 없이 정일권 국회의장, 민복기 대법원장, 김신 교통부장관, 양택식 서울시장이 국립극장에서 벌어진 사건의 충격 속에 개통 테이프를 끊었다.

 

 

 

나는 무궁화를 볼 때마다 그 순간이 떠오른다. 47년이 지난 오늘도 그날 그 시간의 순간 순간들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며 너무도 생생하게. 

 

오전 9시 50분. 남산을 바라보며 광화문 추녀 밑을 비껴 시청 방면으로 사라졌던 차량 행렬이 육영수 여사 생전의 마지막 길이었다.

서울대 의대부속병원에서 운명하신 바로 그 시간에 북한산 자락의 하늘을 물들인 무궁화꽃잎 분홍빛의 신비로운 조화. 

 

 

 

오늘 마당 가운데 무궁화, 첫 꽃이 피었다. 어제까지 봉오리더니 하룻새 활짝 피었다. 몇년전, 안면도 수목원에서 종자를 받아와 싹을 틔운 모종에서 자란 어린 무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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