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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村漫筆

귀촌일기- 태풍 피해(2) 정전 11시간 뭘 했나?



정오를 넘어선 뒤 12시 반쯤 갑자기 정전이었다. 우리집 만인가 해서 전기개폐기 함을 열어 점검했더니 이상 무. 폭우보다 강풍을 몰고 온 링링 태풍이 드디어 사단을 냈다고 생각했다. 그 시간 마침 이곳을 스쳐지나가는 시간이었다. 창문을 꽁꽁 닫아두었어도 주위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가 하두 요란해 절로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정전이 되면 마누라가 제일 걱정하는 게 냉장고다. 정전되는 순간 냉장고 개폐는 절대 금지 통제된다. 테레비, pc 모두 불통이었다. 다행히 수돗물은 나왔다. 가스레인지가 점화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화장지로 심지를 꼬아 끄트머리에 라이터로 불씨를 만들어 가스레인지를 틀면서 조심스레 불을 붙였다. 간단히 끓이고 굽는 거야 매번 성가시긴 하나 그런대로 해결이 됐다.


문제는 언제 불이 들어올 지 모르는 것. 불확실성. 갑갑하긴 집사람이 더 갑갑한 듯, 정보 교환차 이웃집 박 회장네 아주머니와 수시로 통화했으나 거기도 모르기는 마찬가지.  핸드폰 전화로 툭하면 재난 문자는 보내면서 이유나 알아야 하고 언제 정전이 풀릴 지 알아야할 이럴 때는 감감 무소식이다.






우리 마을이 마을 이름 그대로 '안도내'이듯 바닷가 쪽에서도 제일 안쪽의 후미진 곳이어서 단계적으로 보수 작업을 하더라도 순위가 맨 뒤로 밀릴 수 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귀촌 15년 그동안 두어 시간의 정전이나 단전은 있었어도 11시간이나 갈 줄은 몰랐다.






점심은 군만두로 때웠다. 바깥은 두꺼운 구름으로 어둡고 거실이 깊어 식탁에 유리병을 엉거주춤 촛대삼아 불을 켰다. 음식이 입으로 아니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에 굳이 양초불을 켜는 건 이 정도 어두운 것도 못참도록 밝은 전깃불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자고 일어나면 콧구멍이 새카맸던 등잔, 호롱불, 남포불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비싼 양초는 꿈도 못꾸던 때다.


테레비로 바둑 방송이나 볼 가 했으나 순간의 착각, 화면에 바둑판이 뜰리 없고 컴퓨터도 작동 정지. 유튜브 방송이나 들을 가 해서 보니 모바일 폰에는 충전이 얼마 없다. 마누라는 "할 일도 없고 이거나 하자."며 서리태 콩 바구니를 당겨 창가에서 콩을 깠다. 조금 거들었다.





저녁밥은 나가서 먹기로 했다.  그렇찮아도 오늘이 내 생일이다. 얼마 전에 기술센터 인근에 육쪽마늘 사러 가는 길도에서 우연히 보아두었던 입간판, 피자 전문점이 생각났다. 태풍의 머리꼭지는 북쪽으로 빠져나간듯 하나 뒷바람이 남아 아직 거세다. 


차를 몰고 나가자 들머리 이웃 마을에는 반짝반짝 집집마다 전기불이 들어와 있는게 아닌가. "이거원, 우리 동네만..." 볼멘소리로 지나가면서 어쨌거나 두어 시간 후 돌아올 때면 불이 와 있겠거니 안심을 놓았다.







본인의 이름 석자를 건 가게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분위기가 그렇다. 귀에 익은 밤하늘의 블루스 색소폰 연주 가락이 손님을 맞이 한다. 마르게리따 피자 한판에 새우 크림파스타, 카모마일 허브차를 주문했다. 처음 오신 손님이라며 주인장이 포도주 두 잔을 가져와 서비스 해주었다. 


오전에는 내 생일 기념으로 쑥설기 한 상자를 만들어 강풍에 모자를 날려가며 집집마다 돌렸다. 작년부터 마음엔 있으면서 경황이 없었고 엄두가 나지않다가 오늘에사 집사람이 마음 먹고 한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23 가구 집에 태풍때문에 외출 중인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따끈한 떡을 직접 전달할 수 있었다. 타이밍이 아주 좋았다. (다음날 들은 말로,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는 인사말과 정전 때문에 움직이기 싫은데 마침 떡으로 한 끼를 때웠다는 말도 했다.)


식사 중에도 어디에 그렇게 통화할 일이 많은지 집사람은 연신 전화기를 들고 있다. 집에 정전 걱정일랑은 까맣게 잊었다.





언제 그랬냔듯 바람은 자고 중천에 구름사이로 상현달이 달이 떴다. 마을 들머리 꽁바위 고개를 돌아 내려오는데 집 입구에 켜져있어야 할 가로등이 깜깜이다. 아직 정전 복구가 안된 것이다. 집사람은 다시 냉장고 걱정 모드에 들어갔다. 나까지 덩달아 애를 쓸 거야 없다 싶어 "도리 없는 일일랑, 아예 잊어버립시다그려."하고 한 마디 했을 뿐. 정전은 벌써 아홉 시간 째다.

 

이런 경우는 수십 년만에 처음이었다. 서울 같으면 야단에 그런 난리가 없었을 것이다. 여기는 시골. 언제 전깃불이 들어올 지 알 수 없는 일. 내가 어디다 전화 걸어 재촉한다 한들 뻔한 대답에 내 갑갑증만 더하고 상대편 복구작업 만 되레 방해가 될 뿐, 이래저래 속수무책.





촛대불을 세 개 켰다. 심지의 불꽃이 빨리 타 올라 가끔 가위로 잘라주었다. 태풍에 놀란 뒤라 그런지 그렇게 우지짖던 풀벌레조차 숨을 죽였다. 적막강산이다. 초 타는 냄새가 매캐하다. 호랑이 담배 먹던 관솔 등잔 호롱불 시절, 그 땐 어찌 보냈을까. 쌍심지 남포는 또 어떻고.

 

집사람이 전기 들어올 때까지 기다린다며 시간 보내기 화투짝 찾는 걸 보고 나는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일흔 두번째 생일날은 이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