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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의 팡세

귀촌일기- 도서관과 책 이야기





고작 태안읍 3만 명 인구에 덩실한 도서관이 둘이다. 백화산을 병풍 삼아 동서로 기다란 도심 양쪽 끝에 자리잡고 있어 발걸음이 어느 쪽으로 가건 내가 드나들기에 안성마춤이다. 요즈음 도서관에 자주 가는 건 다른 이유다.

집사람의 읍내 출입에 운전수 역할을 하다보면 집에 왔다가 시간에 맞춰 다시 나가기도 그렇고 해서 그 짜투리 시간을 활용하며 기다리기에 도서관이 더없이 좋다. 짧은 시간이라 서가를 일별하며 읽어볼 만한 책을 고르고 자시고 할 시간도 없다. 입구에서 들어가면서 보아 눈에 띄는 아무 책이나 뽑아 길어야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을 메꾸는 것이다.

오늘에사 어쩌다 구석진 곳에 가봤더니 '귀촌 귀농에 관한 코너'가 있었다. 왠 귀농 귀촌에 관한 책들이 그렇게 많은지 놀랐다. 이미 도시화된 시골로 도시의 탈출, 무슨 의미가 있을가. 따라하기 세태의 반영일 가.





지금도 그러하듯 햇살 고운 도서관 창가에서 진득히 독서로 일관했던 기억은 전혀 없다.  평생 그랬다.  '타임'이나 '뉴스위크'를 포켓에 찌르기를 멋으로 알고 도서관 출입으로 다들 학구열을 뽐내던 학창 시절에도 나에겐 도서관이 없었던 건 다른 일에 바빴기 때문이다.  사회에 나와서도 도서관과 거리가 멀었다.  첫 직장인 국회에 국회 도서관이 있었지만 열람석 자리를 빌어 잠깐 연설문이나 축사 따위의 글을 쓰러간 적은 있어도 독서삼매 책을 열람하러 간 건 아니었고, 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는 더더욱 나에게 도서관은 거리가 멀었다.


결혼 초기 전셋방 이사에 가장 큰 짐이 책이었다. 한 해가 멀다하고 셋방을 옮길 때마다 집사람이 이사를 도맡았고 무겁기는 얼마나 무겁나 책들이 애물단지였다. 지금 서재랍시고 있는 나의 서재에는 3천 권 쯤 되는 책은 평생동안 버리지 못해 모인 책들이다. 지갑 털어 알뜰히 구입한 책도 없지 않으나 친지들이 보내준 책에 월부로 산 전집류도 많다.  사회 초년병 시절 10여 년 동안 선배,친구, 후배들을 망라하여 왠 월부 책장수들이 그렇게 많았던지 월급날은 월부 책값 붓는 날이었다. 80년대 후반 지방 근무를 위해 서울을 잠시 떠나면서 월부책을 벗어났다.





나에게는 책에 관한 버릇 하나가 있다. 상대방이 애써 챙기지 않으면 빌려온 책은 적당히 잘 돌려주지 않는 것이다. 서가에 꽃혀있는 이 책들을 보면서 이 책들의 주인을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그 때 그 시절 임자를 찾아 돌려줘야 하나. 내 칼도 남의 칼집에 꽂히면 뽑기가 힘든 법. 실은 나도 꽤나 많은 책들이 다른 사람들의 손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손때 묻은 서재의 책들을 보며 하나마나 한 이야기를 새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