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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하신다구요?

귀촌일기- 이화산과 왜구, 게꾹지...(3-2)



왜구의 과거와 현재를 잘 아는 태종이 

왕세자 충령대군(장차 세종)를 대동하여 

한양 도성에서 멀리 충청도 이화산까지 내려와

그것도 국초에, 친히 강무를 지휘했다는 건 

미래를 견적할 줄 알았던 태종의 안목으로

전혀 의외가 아니다. 


왜구의 심각성을 일찌감치 알았기에

세종은 즉위년(1418년) 첫 과제로

왜구의 소굴 대마도를 정벌하고,  해미읍성을 축조하고,

태안을 복군시키는 등, 일련의 조치는

선대왕인 태조, 태종으로부터 보고 배운

학습효과였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손

태종이 없었다면 세종도 없다.






작년 일본 큐슈에 갔다가

카라쓰(唐津)의 마쓰우라(松浦)강 일대가 대마도와 더불어

왜구의 양대 근거지였음을 알았다.


마쓰우라당(松浦黨)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왜구들의 소굴이었던 것.



큐슈 후쿠오카에서 전철로 카라쓰에,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요부꼬(呼子).

요부꼬에서 마을버스로 꼬불꼬불 산길을 달리

성하마을(城下町). '나고야(名護屋) 성터'다.


1592년 왜군 15만 명이 단 하룻만에 부산에 도착하여

7년 임진왜란의 전초기지였다.


'나고야 성터' 바로 코앞에 있는 섬이

일본에 수많은 문물을 전해주었던 백제, 

25대 무령왕이 탄생한 곳으로

가카라시마(加唐島).




고려의 수도 개경의 흥천사에서

왜구들이 도적질해 온 국보급 문화재 '수월관음도'가

카라스에서 빤히 보이는 가가미산(鏡山)

'가가미신사'에 있다.


왜구들이 훔쳐와

신사에 팔아먹은 것이다.







장물 '수월관음도'가 일본 어느 신사에서

'일본 중요문화재'가 되었다.


생각할수록 

심란한 도시였다.


지금 마쓰우라강에는

까마귀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