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을 굳게 믿는다.
어떨땐 고무신을 끌고서라도 가서 내 발자국 소리를 들려준다.
기껏 5백여 평이지만 하루에 두어번 이 이랑,저 이랑 돌아보는게
일과로 몸에 배였다.
새벽 첫인사가 움이 트는 새싹 들여다보거나
호미질로 주위의 잡초를 제거하는 일이다.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려도
잊지않고 주어야할 채마밭 물은 줘야 밤에 잠이온다.
이제 곧 캐야할 고구마,야콘은 별도로 하고
지금 한창 자라는건 김장배추,김장무,쪽파 그리고 갓이다.
그 중에서도 갓이야말로 하루가 다르다.
"갓이 참 예쁘네유, 잘 키웠슈."
"고맙심다."
오늘도 새벽이슬을 맞으며 내가 쭈구려앉아 갓을 가꾸노라니
옆집 아주머니가 지나가며 찬사를 보낸다.
파릇파릇해질 때부터 벌써 여러번 째다.
아주머니의 감탄사도 어정쩡한 내 대답도 똑같다.
밭농사에 관한한 억척스러움이 마을 통털어 따라갈 사람이 없기에
갓에 대한 칭찬이 남다르기도 하거니와 왠지 겸연쩍다.
그러나 오늘은 한마디를 더 얹었다.
"무슨 갓이래유?"
"남도갓이라는데 청갓인가 봐유."
청갓의 진한 연두빛이 주위의 가을 색갈에 보색으로 대비되는데다
소담스런 자태가 내가 보아도 마냥 탐스럽다.
오늘 다시 솎아줄 때가 되었다.
솎은 갓으로 일찌감치 갓김치 맛이나 한번 볼거나.
자연은 이렇게 돌고 도는 것.
농심은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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