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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冬)

동짓날의 추억

 

아침해는 동쪽에서 남으로 내려가 안개 속에 떴다.  저녁해도 한껏 서남으로 내려가선

이화산 능선 끝에서 졌다.  동지다.

 

 

---冬至는名日이라一陽이生하도다  時食으로팥죽쑤어이웃과즐기리라  새冊曆반포하니

내년節候어떠한고해짤라덧이없고밤길기지리하다---  귀에 익은 농가월령가 11월령의 한

대목이다.

 

동지섣달 베잠뱅이 입을망정 다듬이질 소린 못듣는다. 동지 지나면 푸성귀도 새마음 든다.

동지 때 멍석딸기.  동지에 추워야 풍년든다.  조상들의 일상에서 우러나온 동지 속담은

다른 어떤 절후보다  많아 풍요롭기까지 하다.  가는 해를 잘 마무리하고 닥아오는 한 해를 

준비하라는 가르침이 그토록 수많은 애환 속에서 살아나 새삼 오늘에 빛난다. 

 

  

중국 주나라에서는 동지를 설로 삼았다.  밤을 음으로 보았다.  음기가 극에 달해 비로소

양기가 생기기 시작하므로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가 일년의 시작인 셈이다.  어릴

적이었다.  동지가 작은 설이라는 말에 한 살 더 먹는 게 웬지 좋았다.  단오 선물 부채요

동지 선물 책력이라는 말도 맞다.  올해도 몇 군데서 내년 달력이 부쳐왔다.  나는 버갯속

영감에게 일력을 일찌감치 구해 드렸다.

 

뱃구멍 작은 놈이 팥죽은 더 잘 먹는다는 소릴 들으며 새알심이를 나이보다 많이 먹었다.   

어른들은 팥죽을 쑤어 집안 곳곳에 뿌렸다.  동지를 갓지난 뒤 친구들 집에 가보면 처마밑

담벼락이나 방 구석 어딘가에 얼룩덜룩 붉은 팥죽 흔적이 영락없이 있었다.

 

 

뭐니뭐니 해도 동지 팥죽에는 동치미 하나다.  독에서 갓꺼내 얼음 알갱이가 버석거리는 

동치미 맛이란 생각하면 그렇게 환상적일 수가 없다.  동치미는 동지 쯤에 제대로 맛이

들기 시작한다.  길죽길죽 때론 나막나막 썬 동치미는 긴긴밤 도란도란 야참 간식으로

입에서 녹았다.  요즘 다들 그 맛과 정서를 잊었다.

이런저런 마음에 올해도 동지 팥죽을 먹는다.  갓꺼낸 동치미는 맛이 들대로 들었다.  이제

한 열흘 지나면 소 누울 자리 만큼 해가 길어질 게다.  범이 불알을 동지에 얼구고 입춘에

녹인다는 말도 있지.  소한, 대한 지나면 곧 입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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