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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빼기의 체포 분투기

 

  나는 빽빼기라 부른다.  원래 빼꼼이라는 호적상 이름이 있지마는 이리저리 뛸 때 빽빽 소리를 내므로 애칭삼아 빽빼기가

되었다. 

  서울에서 아파트에 살다 태안으로 온 지 반년 갓 넘었다. 

처음엔 묶어놓고 키우다 지금은 자유방임이다.  혼자는

멀리 가지않고 집 주위에서 맴돌며 낯선 사람이 어정대면

잘 짖고,  내가 나타나면 어디 있다가도 곧장 달려오는 게

영리하고 기특하다.

  

  며칠 전 이 녀석이 발을 절뚝린다. 왼발의 윗쪽 발톱이 솟구쳐

있고 그 부분에 시커멓게 상처가 나 있었다.  어디서 어떻게

다쳤는 지 알 수 없다.

  곧장 병원으로 데려갔다.  태안에는 동물병원이 없기에 멀리

서산행이다.  서산 고속 터미털 옆에 병원이 있는 걸 언젠가

눈여겨 보아둔 터다.  큰 프라스틱 광주리에 담요를 깔고

승용차  뒷좌석에 태웠다.  상석이다.  목걸이로 고정을 했다. 

오늘은 어쩔 수 없다.

  

  병원이 있는 곳은 서산에서 가장 번화가다.  병원 앞 바로

길가에 정차를 하고 깜박이를 켜 둔채 그 놈을 두손으로 안아서 

내렸다.  목줄을 잡고 길에 내려놓으니 번잡한 도심 나들이에

이 녀석 눈이 휘둥그래졌다.

 

  의사는 먼저 빽빼기의 입에 입마개를 씌우고 치료에 들어갔다.  

침을 흘리므로 내가 물었더니 의사는 재깍 차멀리라고 확답을

주었다.  의사는 다리를 치켜들고 이리저리 눌러보더니 별도의

상처 치료는 필요없고 곪지않도록 주사를 놓고 약을 주겠다는

처방이었다. 

  목덜미에 주사를 놓자 딱 한번 깨갱거린 거 외 수진 태도는

아주 양호했다.  주사 한방, 하루 두번 3일분 가루약 값 그리고

사상충 한 알을 합쳐 2만7천원이다. 며칠 전 나의 태안읍내

허내과의 진료와 약값을 합해 7천원이었던 것과 대비가 되었다.  나는 농반 진반 정중하게 의료보험은 안되느냐고 물었더니

의료보험은 없다고 의사는 엄숙하게 되받았다.  나는 빽빼기를 앞장 세우고 병원 문을 나섰다.

 

  문제는 여기서 발단되었다. 길거리로 나서자말자 갑자기 이

녀석 펄펄 뛰며 난리법석이다.  그럴수록 나는 목줄을 단단히

당겼다.  차 뒷문을 여는 사이에 아뿔사 목줄이 빠져버렸다.

이 녀석 그 사이에 4차선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쏜살같이 저 쪽

으로 달아났다.  그 바람에 지나가던 차가 급정거를 했다.

뒤따라 오던 차도 연달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건너서 다가가면 다시 반대편으로 달아났다.  달리는

차량에 아랑곳 하지않고 왔다갔다 숨바꼭질 하는 사이에 차들은

여기 저기서 경적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더우기 내 차의 문이

열린 상태로 있었으므로 차선은 더욱 비좁아져 있었다. 서다가다

거북이 걸음이다.  

  마침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절은 여자 옆으로 슬슬

다가가 서성거리기에 이 때다 싶어 잡아달라고 멀리서 손짓으로

부탁을 했더니 이놈이 먼저 알아차리고선 더 멀리 달아났다.  갑자기 바깥이 소란하므로 동물병원 의사도 문을 열고 나와서

나를 도와주려고 애를 썼으나 조금 전 주사의 트라우마가 남아서인지 허사였다.

  이젠 빽빼기보다 내가 고속 터미널 앞 길거리의 주인공이 되어

버렸다.  차에 타고 있는 승객이나 지나가는 행인은 모두 서서

저 양반이 어떻게 개를 붙드나 거기에 시선을 집중하는 것 같았다. 

 

  십 여분이 지났으나 속수무책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잠시

쭈그려 앉아버렸다.  허탈 그 자체.  이 녀석은 길 건너편에서 

힐끗힐끗 눈방울만 굴리며 다가올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실로 난감.  이럴 때 119를 불러야 하나.

 

  어쩔 수 없이 다시 일어나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다시 한번

시도다.  나는 빽배기와 시선을 맞추며 조심스레 다가갔다. 

이 놈도 이젠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렸음인가 피곤해서인가

슬슬 뒷걸음 만 칠뿐이다.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한 채 나는

땅을 손바닥으로 톡톡 치면서 오라는 사인을 보냈다.  집에서

그렇게 하면 먹을 걸 주는 줄 알고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러자  눈을 아래로 깔고 잠깐 생각하는듯 하더니 꼬리를 내리고

머리를 숙인채 어슬렁어슬렁  다가오는 게 아닌가.  얼마나 고마운지.

 

  그러나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빽빼기가 더 가까이

오자 나는 목덜미를 재빠르게 낙아채듯 붙잡았다. 보통 때면 깨갱

거릴텐데 조용했다.  그 순간 누군가가 박수를 쳤다.  안도감에

비로소 박수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집에 와서 보니 깔고앉았던 담요는 토사물로 범벅이었다. 오는

도중에 끝내 차멀미를 하고 말았다.  담요를 씻어 말렸다. 

어느 하루 빽빼기의 병원 왕복기는 이렇게 끝났다.

 

  그후--제목을 수정해야 하나.  실은 체포가 아니라 빽빼기의 자진

출두였으므로 집에 돌아와 더 이상 추궁은 하지않았다. 정상참작.

  상처에 물이 들어가지않도록 하라던 의사의 말대로 도내나루 아침

산보길도 잠시 중단했다. 상처는 차츰 까만 딱지가 앉으며 아물고

절뚝거리던 발은 정상을 되찾았다.  애를 멕인 그 순간을 생각하면 진땀이 난다.  당시의 생생한 기록물이 없어 아쉽다.  그런데

의문이 있다. 반려동물에 의료보험을 적용하면 어떻게 될가.  그런 날이 올가.  그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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