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갯속 영감님은 뇌졸중으로 꼬빡 삼년째다. 본래 귀가 어두운데다 이젠 말씨까지
어눌해 손짓 발짓에 서로 쳐다보는 표정으로 겨우 소통한다. 전립선 약을 수십 년
드신 끝에 이젠 오줌 누기마저 힘들다. 요즈음 들어 병원 출입이 잦다.
버갯속 영감님은 일력을 가리키며 검지와 중지 손가락 두 개를 펴서 보인다. 나는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일력을 구해 달라는 뜻이다. 재작년까지 다섯 개더니
작년에는 세 개, 이젠 두 개로 내려갔다. 버갯속 영감님이 일력을 부탁할 즈음이면
한 해의 끝자락이다.
실은, 오늘 영감님 방에 들어가자마자 벽에 붙어있는 일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시길래
한 장을 떼어달라는 걸로 알아듣고 무심코 얼른 떼어버렸더니 그게 아니다. 옆에 있던
요양보호사가 다시 풀로 붙였다. 조금 비뚤게 붙였더니 다시 붙이라고 하셔서 제대로
똑바로 붙였다.
익어가는 가을 대문간 앞 떨어진 은행 알은 지천인데 버갯속 영감님에게 봄은?
3년 전 여름 어느날 우리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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