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이 지쳐 우거졌다. 백화산을 올랐다.
바로 밑 양지바른 산기슭이 샘골이다. 주머니 마냥 오목 잘룩한 이 골짜기가 태안의
연원이다.
볼수록 천혜의 지형이다. 태안의 지명이 실로 예사롭지않음을 새삼 알겠다.
멀리 천수만과 안면도가 보일듯 말 듯 남녘으로 드리웠다.
샘골엔 세월의 흔적은 간데 없다. 옛 절터를 가리키는 젊은 농부가 기특하다. 뙤약볕
내려쬐는 밭두렁 사이에 이런저런 농작물만 오늘 하루 무심하다.
꼭대기 천년 백화산성에는 이끼도 없다. 칡덩쿨과 담쟁이가 제멋대로 이리저리 석축을
둘렀다.
시공을 그슬러 혼자서 그 때를 짐작할 뿐이다.
기와 조각 파편이 우연히 발아래 있다. 어디 있다 이제 나왔는지 깨어진 질그릇 한
조각이 햇살에 딍군다.
그렇다. 지난날 흔적이야 있건 없건 무슨 상관이랴. 샘골도 백화산성이 있어 그걸로
여기는 내포 태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