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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낯선자와의 악수

 

 

이 양반은 나보다 먼저 제천으로 갔다.

나는 태안으로 왔다.

나는 제천에 한번 간다간다하면서 가보지 못했다.

이 양반도 여길 한번 온다온다 하면서 와보지 못했다.

같은 충청도인데 발품이 서울 부산보다 어렵다.

 

 

 

 

소포 하나가 왔다.

 

'낯선자와의 악수'

 

'귀농일기'에 이어 이 양반이 낸 열네 번째 시집이다.

열자마자 서문을 읽으며 나는 피식 웃었다.

-농사는 11년동안 늘 참패를 했다.

그러나 시가 있고 자연이 있어 억울하거나 자존심 상하지않는다고...

 

117쪽의 시 한편이 가슴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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泰安의 친구

 

泰安,하고 말하면

모래톱으로 부터,걸쭉한 갯벌로부터,

황토 빛 노을 솟구쳐 하늘로 오르는 저녁......

이 생각난다.

발걸음 옮길 때 마다

발목에 감기는 그림자가 아늑한 회상을 밀물에 밀어넣던 해변에는

끈적끈적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발자국 끌고 절름거리는 그림자들이 매달려

바다가 숨가쁘게 내뱉는 쿨룩쿨룩 기침소리에 묻어나고

멀리,유령처럼 검은 섬으로 얼비치는 유조선의 망령이

자꾸 자꾸 갈매기도 떠난 섬을 덮치는

무서운 밤이 길어졌다.

 

해변에 황토 집을 짓고 꿈에 부풀던 친구는

더 이상 놀러오란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

 

저녁마다 노을을 뭉쳐 모래구슬을 만들어 놓고

몰래 숨어 들어가던 칠게는 어디로 갔는지

짱뚱어 모시조개 고동도 자취를 감춘 갯벌엔

친구의 한숨만 먼 바다로 쓸려 나갔으리라

아직도 시커먼 바다에 빠져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죽은 죽은 철새의 검은 깃털이

여기저기 찢겨 날리는 바닷가

따뜻한 泰安의 친구야,

그저 미안함에 안부도 전하지 못한 소줏병 하나, 무자년 데불고

검은 노을을 걷으러 찾아 가리라 마는

검게  질척이는 발자국이나  네 맘에  가득 찍어놓고 오게 될지

몰라

망설이는 밤이 하얗게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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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반은 恒山 유창섭 시인이다. 지식과 경륜 그리고 열정이 가득한

이 양반을 사숙한 지 오래 되었다.

회사의 선배이자 동료였다. 내 아호인 우암도 이 양반의 선물이다.

이 양반은 동인 '시인촌'의 지도시인으로 충북 제천시 수산면 대전리

자택을 개방했다. '시인촌'을 치면 홈페이지를 만날 수 있다.

제천,단양에서 창작교실을 열어 후학 육성과 지도에 바쁜 나날이라는

소식은 철따라 간간이 전해온다.

 

恒山님.

바라만 보다 세월 만 갑니다그려.

태안 갯벌 온전하오니 일차 왕림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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