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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갯속 영감 교유기(交遊記)

귀촌일기- (30) 전화

전화                                                                                            (30회분)

 

  “형철씨요?”

  버갯속 영감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아, 영감님. 왠 전화로예.”

  “워디여?”

  “버, 서울 다 왔십니더. 새복(새벽)에 출발해서예.”

  “지금 올라간다구. 허허, 그럼 원제 온다나?”

  “모레 쯤예.”

  “어허, 우짜누. 요걸.”

  “와예?”

  “내일 말이여, 동네서 풀베기를 한다는디...”

  “예?”

  “그런 소리가 들리는디... 허허.”

  풀베기라는 말이 나를 긴장시켰다. 추석을 앞두고 마을 청년회에서 풀베기 작업을 한다는 얘기였다.

  “약쑥이구 뭐구 기냥 절단 내버린당게.”

  “큰일 났네예.”

  “약쑥이 뭔지나 아남. 기양 잡초여 잡초.”

  “그러모 우짜지예.”

  “허이구, 쯔쯔쯔.”

  영감의 혀 차는 소리가 그대로 들렸다.

  “허허, 워쩔까잉. 요기 있으문 한띠(함께) 갈랬는디...”

  당장 같이 쑥을 베러가자는 긴급 상황이었다.

  “아이고, 마... 내삐러두입시더.”

  나는 결단을 내렸다.

  “허허, 그런 말 마랑께.”

  실망하는 기색이 그대로 실려 나왔다.

  “저 땜에 놓친 긴데 우짭니꺼. 지 잘못입니더. 배우는 놈이 지대로 했어야 했는데... 이리 됐승께네예. 고마 내년에 하입시더. 내년에예.”

  멀리서 용을 써서 될 일이 아니었다. 영감을 어르고 달래는 도리밖에 없었다.

  “.............”

  영감의 목소리가 갑자기 사라졌다.

  “영감님예, 고마 내년에 하는 김니더. 아셨지예.”

  나는 허공에 내뱉었다.  

  “.............”

  영감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이제 됐지예?”

  “그러무 안되는디... 약속 불이행은 첨이네그려. 쯔쯔.”

  얼떨떨한 영감의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처음이고 뭐고예. 내년 가서 할 거 조끔 남가두이소. 쌔삐렁기 시간인데예.”

  “허허, 내년까지 살아라구?”

  “그래야 같이 약쑥 꺾지예.”

  “허허, 이기 아닌디...”

  “아이기는 뭐가 아니라예. 그러케 하는 깁니더이.”

  “허허, 도리 없이 내년꺼정 살아야겠구머잉.”

  “예? 뭐라꼬예?”

  “허리 아파 죽겄어. 죽는 거이 약이라니께. 나보고 더 살아라구? 어이구, 노인이 무슨 내년이 있다구...”


  마지막 목소리였다. 이래저래 약쑥의 약속은 내년으로 넘어갔다.


                                                                                     계속 연재합니다.  마지막 1회분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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