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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의 팡세

귀촌일기- 1.20 동지회 <청춘만장>과 <반일 종족주의>








나는 서가에서 탈색되어 바래진 책 하나를 뽑았다. <靑春挽章>. 지금부터 46년 전에 당시 <1.20 동지회>의 총무이셨던 정기영 회원님으로부터 받은 책이다. 그동안 눈여겨 보지않고 서가 한편에 묵묵히 꽂혀있었는데 최근 출간된 <반일 종족주의>를 읽으면서 <1.20 동지회>를 상기하게 되었고 새삼 <靑春挽章>을 기억했던 것이다.


1.20 동지회는 일제 강점기 말 학병 출신들이 결성한 모임으로 그들이 태평양 전쟁터에서 겪은 경험담을 담아 1973년에 엮어낸 책이 <靑春挽章>이다. 挽章이라 함은 '죽은 사람 애도하여 지은 천이 종이 적어 깃발처럼 만든 것'으로 장사 지낼 상여 들고 간다. 책 이름이 <靑春挽章>... 그 당시 20대 초반의 혈기가 넘치는 젊은이들이 일본군의 학병으로 출정하는 과거 자신의 모습에서 느꼈던 냉소적이면서 허무적인 자화상이라 하겠다.








<반일 종족주의>112쪽에 <1.20 동지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1.20 동지회라는 단체를 1971년에 처음 알게 되었다. 내가 24세 때다. 그 해 대학을 졸업하고 구태회 국회의원 비서가 되었는데 구 의원이 1.20동지회 회원이었다. 구 의원은 1923년 생으로 서울대 재학중 소집되어 중국의 남방 소주까지 갔다가 해방과 함께 돌아와 정치에 입문하여 4선 중진으로 당시 8대 국회의원이었다. 해마다 1월 20일이면 그 날을 기념하여 1.20동지회 정기총회를 했다. 1944년 1월 20일은 4.385명, 소위 '조선인학도 육군특별지원병'이 일제히 입대한 날이었다.





1970년대 <1.20 동지회> 정기 총회는 청계천 2가 전기회관 강당에서 주로 열렸는데 당시 장경순 국회부의장이 회장이었다. 2백 여명이 모인 회원들은 40대 후반의 우리나라 정치,경제,문화,언론,교육 등 각계 지도층으로 쟁쟁한 인사들이었다. 1.20 동지회의 향후 사업방향을 활발히 논의하고 끈끈한 동지애를 과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1.20 동지회야말로 세월이 가면 언젠가는 저절로 소멸될 모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새로운 후배 회원이 있을 수 없는 모임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랬다. 1944년부터 75년이 지난 지금 1.20이라는 숫자는 허공에 사라지고 흔적은 오로지 <靑春挽章> 한 권의 책으로만 남았을 뿐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