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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병주 문학관>에서 '그 친구'를 만나다

 

 

 

 

3박 4일 남도 기행에서 마지막으로 드른 곳은 <이병주 문학관>이었다.

 

우리나라 현대문학사의 거봉인 나림 이병주 선생의 문학세계와 남기신 저작의 향기를

새삼 더듬으려 간 것이 아니었다.

당신의 고향인 경남 하동군 북천면에 문학관이 섰다는 말을 들은 후 언젠가는 하며

마음속에 반드시 벼르고 있었다는 것만도 아니었다.

 

이병주 선생은,

60년대 대학 학창시절의 친구 이권기의 아버지이며,

선생의 서울 서대문구 녹번동 서재 시절에 우연찮게도 나 또한 같은 이웃인데다 아들의 친구로서 가끔 뵜으며,

70년대 초 사회에 나왔을 때 내 첫 직장의 어른과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군 학병 출신 모임인

1.20동지회의 같은 회원으로 모임 때마다 만나 인사를 드릴 기회가 있었으며,

주말 북한산 등산을 할라치면

북한산 대성문에서 대동문으로 넘어가는 능선 중간 쯤 어디선가 반드시 그 곳 그 시간에,

그곳은 막걸리를 지게에 지고 올라와  등산객을 상대로 좌판을 벌인 곳으로 

볼콰해진 얼굴로 당신의 등산 일행들과 열혈방담 중이신 걸 뵈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1992년 봄 어느 날 조간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놀라 

서울대학병원 빈소를 달려갔는데... 상주인 이권기 '그 친구'를 그 자리에서 만난 것이

21년 만이더라.

 

그 친구도 바빴을 터이다.

 

세월은 다시 흘러 24년이다.

 

나도 바빴다.

 

40여 년이라는 궤적이 이번 고향길에 저절로

발걸음이 그곳, <이병주 문학관>으로 옮기게 했을 뿐이다. 

 

 

 

 

 

<이병주 문학관> 1층 전시실을 막 들어섰을 때 마주친 흑백 사진.

20대 초반의 이병주 선생이다.

 

내 빛바랜 앨범에서 48년 전 '그 친구'와 너무 닮았기에

놀라고 한편 감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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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년 전이다.

20대 초 학창시절, 내 앨범에서 흑백사진 하나. 

 

왼쪽이 바로 '그 친구' 이권기,

이병주 선생의 아들이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아니랄까봐 이미 반백의 '그 친구'를

마지막으로 본 게 1992년 4월 이병주 선생의 빈소였으므로

24년이 지났다.

 

'그 친구'는 지금 어떤 모습일 가.

 

나 또한 백발이다.

 

 

 

 

<참고>

지난날 이병주 선생과 얽힌 이야기는 블로그를 통해  

                                                                    2008년 9월11일   귀촌일기- 악우

                                                                    2011년 7월12일   세월, 아마도 빗물이겠지

                                                                    2015년 9월24일   귀촌일기- 이병주 그리고 '천망'

이미 세번에 걸쳐 글을 올린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