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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갯속 영감 교유기(交遊記)

귀촌일기- (28) 지팡이

지팡이                                                                                                       (28회분)

 

  나는 한동안 버갯속 영감을 보지 못했다. 영감을 마을 회관까지 태워다 준 그 날이 마지막이었다.

  상옥(上玉)으로 해서 태안 읍내 나가는 길목에 마을회관과 경로당이 한 건물에 있다. 버갯속 영감은 회장이어서 때론 출퇴근을 하다시피 했다. 우리 집에서 마을 회관까지 일 키로가 넘어 한달음에 걸어가기엔 버거웠다.


  바로 그날이었다. 점심때를 갓 지나 햇살이 따가웠다. 서쪽에서 버갯속 영감이 우리 집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영감 집에서 우리 집으로 질러오는 마지막 오르막길이었다. 흐느적흐느적 평소 눈에 익은 팔자걸음이 아니었다.

  뽕나무 옆 모퉁이를 돌자 영감은 나를 보았다. 영감은 무언가를 들고 흔들었다. 구불구불한 나무 지팡이였다.

  “나, 회관 가는 길일세. 어이구, 소릿길이 숨은 더 차네그려.”

  영감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

  “어이구, 허리야.”

  “오늘, 웬 지팽이를 요?”

  “요럴 땐 작데기가 편하다니께.”

  지팡이를 내보란 듯이 흔들어보였다. 굴참나무를 적당히 잘라 만든 것이었다. 바쁘게 서두는 모습이 아무래도 회관까지 차로 태워드려야 할 것 같았다.

  “같이 가입시더. 차로...”

  “허, 참, 기냥 가도 되는디...”

  사양하면서 영감의 발걸음은 차가 있는 쪽을 향했다.

  “이렇기 품매서 어떡한디야.”

  미안해하는 말을 나는 귓전으로 흘렸다. 영감이 서두르는 이유가 궁금했다. 

  “에이, 별놈의 일이 다 있다니께. 쯔쯔쯔.”

  차를 타면서 영감은 길게 혀를 찼다.

  “와예?”

  “내 공적비 있잖유? 부셔졌슈. 그 공사여.”

  “뭐시라꼬예?”

  회관으로 가면서 자초지종을 알았다. 며칠 전이었다. 어떤 차가 후진을 하다 회관 앞마당에 서있는 영감의 공적비를 들이받아 기울어졌다. 망가진 상태로 오래 둘 수 없어 곧장 보수공사에 들어갔다. 그날이 공사가 끝나는 날이라 영감 입회아래 마무리를 하러 가는 참이었다.

  “쬐끔만 주의 하면 되는디... 남의 비석을 들이다 받는 넘이 워디 있다나. 그러구선 도망가버렸다니께. 허 참.”

  “도망을 갔다꼬예?”

  “아직즉 못 잡았슈. 빌어먹을...”

  버갯속 영감은 언짢은 심사를 감추지 않았다. 하필 당신의 공적비가 부서 진 데다 어느 놈이 그랬는지도 모르고, 안 해도 되는 보수까지 하게 되었으니 이 바쁜 시절에 짜증이 날만도 했다.

  “그런 놈이 어딨습니꺼? 잡아서 혼쭐 내야 할낍니더.”

  영감의 기분을 생각해 짐짓 내가 흥분해 보였다.

  “근디, 시상(세상)이 이 모양이여.”

  “글케 말입니더.”

  “허허 참. 워쩔거여.”

  “액땜했다 치고 넘기삐리시이소.”

  은근히 들었다 놓았다하며 영감을 달랬다. 영감도 운수소관으로 돌리며 열을 식히는 모습이 역력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인부 두 명이 비석 둘레석에 붙어서 부지런히 마감공사를 하고 있었다.

  ‘石浦 金鍾萬里長 功績碑(석포 김종만이장 공적비)’는 마을회관 앞마당에 그대로 우람했다. 영감은 공사가 제대로 되었는지 주위를 돌며 점검에 들어갔다.

  “이 참에 튼튼한 놈으로 바꿨슈.”

  영감의 목소리는 힘찼다. 이제는 둘레석이 절대로 망가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표명했다. 버갯속 영감은 당신의 공적비를 어루만지며 긴 비문을 새삼스럽게 읽었다.

 

  ‘1962년 1월19일부터 1990년 2월 5일까지 28년간 이장으로 근속하면서 온갖 역경을 무릅쓰고... 도내 어은 간 매립공사를 3년에 걸쳐 완공하는데 주역이... 그리하여 기초마을 자립마을을 거쳐 승자마을로 이제는 부자마을로 이끌었다.’


  “남의 비석을 들이받는 놈이 워디 있다나?”

  영감은 여전히 이해를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글케 말입니더.”

  나는 공허하게 덧붙였다.

  영감은 주위에 흩어져있는 자재를 앗아 주며 인부를 도왔다. 언제 마무리가 끝날지 알 수 없었다. 엉거주춤 서 있는 나에게 영감이 말했다.

  “가대기치구 곧장 감세. 먼첨 가라구잉.”

  나는 어쩔 수 없이 영감을 현장에 남겨둔 채 혼자 돌아왔다.

 

  그 날 이후 버갯속 영감이 보이지 않았다. 멀쩡했던 공적비가 어느 날 난데없이 부서지자 다들 말은 안하지만 주위 사람 모두는 찜찜했다. 장본인의 심사를 고려해 일찌감치 복구를 서둘렀다.

  비석이 탈이 난 다음이라 뭔가 개운치 않았다. 비석이 받친 충격에다 때 아닌 공사 감독 하느라 몸살이라도 났을 가. 작년에 제주도를 다녀와 입술 터진 거 외는 전혀 건강했다. 향교에서 만나는 구십 먹은 노인이 당신보다 더 단단하다는 말을 한 적은 있으나 그다지 부러워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하루 세끼 외에 안 먹는 음식도 많고 양도 적었다. 깡마른 체구가 오달져서 야무지게 보였다. 구리 빛에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는 이마를 보면 전형적인 시골 노인이었다. 오줌과 허리가 영감을 괴롭힐 뿐 타고난 장수 체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웬 땀은 그리 흘리누.”

  내가 흘리는 땀을 보며 가끔 영감이 말했다.

  “일을 하모 땀을 좀 흘리야지예.”

  “허허, 난 말이여, 땀이라고는 안 나.”

  말 그대로 영감은 땀이 없었다.

  ‘땀 없는 사람하곤 상종하지 말라카데예.’

  나는 이 말을 꾹 참았다. 철딱서니 없이 어른을 너나 돌이 하는 것 같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영감이 장갑 끼는 걸 본적이 없었다. 뙤약볕에도 모자를 쓰지 않았다. 별난 영감인데다 스스로 이렇게 강조했다.

  “허허, 난 앵경도 없다니께. 귀먹쟁이가 눈은 밝어.”


  지난해 가을은 무가 풍년이었다. 버갯속 영감의 집안 동생뻘인 종호 씨 집에 무가 남아돌았다. 당초 농협과 계약재배를 했기에 기준에 따라 보상을 받고 그대로 갈아엎는 무였다. 이 무가 아깝다며 뽑으러가자고 영감은 여러 번 나에게 말했다.

  “버리머 아까우니께, 갖다 먹으라구잉.”

  “그저끼 농협서 나와 사진 찍고 갔다니께.”

  영감의 성화를 이기지 못했다. 어느 날 함께 북창에 있는 무 밭으로 차를 달렸다. 처녀 장딴지 같은 무가 이천 여 평에 밭뙈기 채로 나자빠져 있었다.

  “허허, 참...”

  나는 어안이 벙벙해 바라보고 만 있었다. 그 사이에 벌써 영감은 무 서너 포기를 뽑았다.

  “뭘혀. 서 있지만 멀구...”

  나를 채근한 영감은 다시 엎드렸다. 허리가 아프다고 자장가를 부르던 영감이 아니었다.

  “뭐 하는 기여? 개릴 것도 없슈.”

  영감은 서둘렀다. 나는 영감이 가지런히 놓아둔 무를 고랑을 따라가며 자루에 담았다. 앞서가던 영감은 미심쩍은 듯 연신 나를 돌아다보았다. 영감과 보조를 맞추느라 나도 속도를 냈다. 어딘가 내가 어설퍼보였는지 한마디를 던졌다.

  “요거봐, 힘 빼구 거쩐거쩐혀.”


  지난여름 어느 날이었다. 영감 밭에 단호박을 따러 갔다. 첫물을 걷어낸 뒤에 남아있는 호박이었다.

  “쬐끔 만 움직이면 죄다 식량이여.”

  영감의 한 마디에 나는 두말없이 따라나섰다.

  “놀고 있으먼 뭐 할 거여?”

  지나가는 말 같았으나 영감의 어투는 투박했다.

  첫물을 걷었지만 여기저기 호박이 딩굴고 있었다. 내다 팔기는 모자랐으나 집에서 먹기는 충분했다. 우북한 호박 넝쿨 사이에서 온전한 놈도 더러 있어 횡재하는 즐거움도 주었다.

  영감은 고랑을 손과 발로 짚어가며 호박을 골라냈다. 나는 영감의 유연한 몸놀림을 잠시 감상을 하고 있었다.

  “요거 봐, 요런 게 맛은 더 하다니께.”

  영감은 호박 하나를 들어 보여주었다. 여름 내 따가운 햇살을 받아 껍질 한 부분이가 허옇게 굳어졌다. 모양과 달리 노오란 때깔이 단맛은 더 있어 보였다.

  “빨리 안 가져 가머 양배추 심는다구 갈아엎을 텡게잉.”

  영감은 밭에 나온 걸 다행으로 생각하는 눈치였다. 영감은 무더기 무더기로 따둔 호박을 자루에 착착 담아서 쏜살같이 날랐다. 팔순을 앞둔 노인이 아니었다. 영감의 절반 정도라도 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이 문제였다. 나는 갑자기 어깻죽지가 눌리고 옆구리가 뜨끔거렸다.

  “허허, 농사일, 힘으로 하는 기 아녀. 요령이여.”

  돌아오는 차중에서 영감의 핀잔이 기어코 날아들었다. 영감이나 나나 체질이 비슷했다. 영감은 호박자루를 무리하게 들지 않았다. 땅에다 놓고 슬슬 당기거나 끌었다.

  분간 없이 영감을 따라했던 게 끝내 화를 불렀다. 감자 심을 때 왼쪽 어깨에 난 탈이 단호박 때문에 덧났다. 평소에 안 쓰던 근육이 놀랐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으며 나는 기분이 우울했다. 며칠 동안 나는 병원 문턱을 드나들었다.  차마 이 사실을 영감에게 이야기하지 못했다.

 

  버갯속 영감은 여전히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영감과 헤어지던 날이 떠올랐다. 영감은 혼자서 열심히 비석을 복구했다. 공적비를 어루만지며 비문을 새삼스럽게 읽어가던 영감의 표정이 내 눈에 어른거렸다.

 

 

 

 

                                                                                                                                              계속 연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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