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상무 아리랑

LG 93-98 김상무 아리랑(34화) "화촌에 도시락 시키지."

 

34

 

 

 <중복사업의 통합>이라는 테마가 가는 길은 험난했다. 금성산전, 금성계전, 금성기전 3사의 통합은 3사 사이에 중복된 사업의 통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이플랜에서 가장 난제다. 통합작업의 핵심이다.

 

<엘리베이터 사업>와 <송배전기기 사업>은 물론 PLC를 포함하여 공정제어, 센서, 온도조절 밸브, BAS는 금성하니웰과도 중복이다. 그 중에서 매출이나 인원 면에서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엘리베이터 사업>이 최대 관심사항이다.

 

 

 

오늘은 <중복사업의 통합> 프로젝트의 보고회 날이다.

 

 

어제 오후 늦게 갑자기 이희종 CU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불가피한 외부 일정이 생겼으므로 허창수 부사장 주관으로 보고회를 진행하라는 내용이었다.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입술이 마르는 순간이다.

 

에이플랜의 일정상 뒤로 미룰 수도 없다. 중요한 사안일수록 빠른 의사결정을 하지않으면 다음 단계의 작업이 불가능하다. 톱니바퀴 돌듯 병렬로 일어나는 관련 다른 작업이 제약을 받았다.

 

CU장 없이 회의 진행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부랴부랴 오전 아홉 시로 시간을 당겼다. 통상적으로 보고회는 오후 두 시이다. 문제는 보고회에 걸리는 시간이었다.

 

CU장이 오후 외부 약속시간에 맞추어 회사를 출발하기까지 두 시간으로는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민감한 안건일수록 치고 받으며 충분한 토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늘 해왔던 대로 며칠 전에 CU장에게 보고 내용의 욧점과 의사결정 주문사항에 대해서는 이미 튜닝을 마쳤다. 각 사의 사장들도 에이플랜 팀원과 매킨지 멤버와 함께 방문하여 내용을 사전 설명을 했다. 공식 프레젠테이션에 앞서 효율적인 회의의 진행을 위한 통상적인 프로세스였다.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나는 예상되는 돌발 질문에 항상 대비하기도 했지만 여느 회의가 그렇듯 전혀 엉뚱한 데서 시간을 보내기가 일쑤였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나는 CU장을 찾아갔다. 이해관계가 미묘한 대목을 중심으로 다시 한번 주의를 환기했다. 

 

 

“ 오늘 안건은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다들 이야기가 많을 듯합니다. 몇 가지 논점은 반드시 오늘 결론을 내 주십시오. ”

 

 

“ ........ 알았어. 내가 할 테니까. ”

 

 

 

 

회의는 아홉 시 정시에 시작되었다. 경영회의 멤버인 통상적인 스티어링 컴미티 멤버 외 각 사업의 사업부장들도 배석해 중복사업이 뜨거운 감자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먼저 그 동안의 작업 경과와 오늘의 주요 결정 요망사항을 설명했다. 그리고 시간 절약 위하여 에이플랜 팀의 보고를 모두 들은 다음에 일괄 토의를 하자고 제안을 했다.

 

 

 

이어 <중복사업의 통합> 작업의 팀장인 문동일이 보고를 시작했다.

 

 

“ ... 품질면에서 한 대 당 월 평균 고장회수가 월 2회 이상이면 다소 불만이긴 하지만 위험 수준입니다. 현대가 이 수준이고 동양이 월 0.5회로서 가장 우수하고 산전, 기전은 양호한 수준입니다.

 

보수의 신속성에서 고장 한 번에 불가동 시간이 90분이면 위험수준입니다. 기전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산전이 가장 양호하고 다음이 현대, 동양 순으로 .... “

 

 

‘고객의 만족도와 신뢰성과의 관계 및 현황‘ 부분을 문 부장이 설명하고 있었다. 에이플랜 팀이 고객의 인터뷰와 시장에서 수집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였다.

 

 

 

 

그럼 기전 엘리베이타가 엘리베이타 4사에서 가장 나쁘단 말이요? ”

 

기전의 김회수 사장이 투박한 경상도 말로 껄끄럽게 내뱉었다. 엘리베이터 4사는 국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금성산전, 금성기전, 현대 엘리베이터, 동양 엘리베이터를 말했다.

 

사전 튜닝으로 에이플랜 팀이 검토한 내용의 줄거리를 김 사장에게도 이미 설명했었다. 그 때는 별 말이 없다가 오늘처럼 정식 보고회 자리에서 처음으로 확인을 한 듯 야단을 칠 때는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사장의 체면이 구겨지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담당 사업부장들은 사업부장대로 사장의 표정을 읽으며 가시방석이었다. 아래 사람으로서 눈치가 없지 않았다. 하다못해 자료의 부정확성이라도 걸고 넘어가야 했다.

 

공개된 그런 자리에서 멍청하게 가만히 앉아있었다고 회의가 끝나고 자기 회사로 돌아가서 사장한테 '된통 깨진'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김 사장의 돌출 질문으로 인해 보고 청취 후 일괄 토론을 하자는 당초 나의 제안은 뒤로 밀렸다. 토론이라기보다 점차 말꼬리를 물고 무는 논쟁으로 전개되었다.

 

 

산전과 기전의 엘리베이터를 담당하는 사업본부장인 이중칠 전무와 김용호 상무의 발언이 이어졌다.  산전의 이희종 CU장과 기전의 김회수 사장을 대리하는 대리전을 연상시켰다.

 

 

“ 미쓰비시가 떨어져서 한국 시장에 안들어올 것 같습니까. 신 4사 체제가 되면서 경쟁만 더 심해지는 겁니다. 혹 뗄려다가 혹 붙이는 거와 같습니다. ”

 

기전의 김용호 상무였다.

 

 

“ 산전, 기전 엘리베이터의 통합이 삼성이 신규 참입하는 결과를 부를 겁니다. 금성이 시작해서 된다싶으면 지금까지 중간에 안끼어든 사업이 있나요?

이천전기를 인수했으니 도시바와 관계를 활용해 도시바 엘리베이터와 제휴할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 있습니다. 캡티브(Captive) 물량을 두고 그냥 가지 않을 거예요. ”

 

지난 < 주요사업 진단 >의 보고회에서도 이미 나왔던 이야기다. 우려는 끝이 없었다. 중복사업의 검토는 에이플랜에서 수류탄의 뇌관을 안고 뛰는 거와 다름이 없었다.

 

 

 

문동일 부장은 보고를 계속했다. 잠시 후 보고는 다시 중단되면서 토론이 벌어졌다.

 

 

“ 기술선의 선택은 엘리베이터만이 아닌 CU 전 사업의 기술선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와 대응 방안이 있어야 합니다.

합작선에 대해 그룹의 종합적인 방침이 유동적이라면 우선 산전과 계전을 통합하고 기전은 당분간 현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

 

 

“ 모델은 단일화하고 영업을 2사 체제로 하자는 말인가요? ”

 

 

“ 엘리베이터의 성격상 수주생산에다 설치공사가 중요한데 그건 곤란합니다 ”

 

 

 

대안이 없는 문제의 제시만 넘쳤다. 묘안이 없었다. 현 체제의 유지는 현실 안주를 의미했다. 그러나 이미 중복사업의 통합이라는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CU장의 오후 외부 일정을 감안하여 두 시간 정도로 끝내야 하는 회의 시간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어떻게 흘러갈지 결론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었다. 토론은 뒤에 하자고 당초 당부사항을 환기시켰으나 계속 제어하고 나서기가 어려웠다.

 

 

이럴 경우 가끔 매킨지가 논리적으로 접근을 하면서 불을 끄는 소방수 역할을 했다. 나보다 그런 면에서 적격이었다. 미묘한 사안에서 나와 매킨지는 상호보완적인 행동을 취했다. 이처럼 회의 진행에서도 막힌 곳을 뚫어주는 역할 분담이 자연스레 이루어지고 있었다.

 

 

 

 

오늘 매킨지는 침묵했다. 한두 번 후지모토에게 시선을 주었지만 웅크리고 앉은 채 요지부동이었다. 나아갈 때와 나아가지 않을 때를 잘 아는 그들이었다. 절묘한 타이밍에 나서고 발언의 수위도 절묘하게 유지했다. 상황의 포착과 수준의 유지가 그들의 노하우였다.

 

 

소모성 논쟁이나 언쟁이라 판단될 때에는 CU장이 나섰다. 토론의 주체는 CU장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지금, CU장은 지루할 정도로 방치하고 있었다.

 

이희종 CU장은 계속 침묵했다. 마음껏 공방을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중복사업의 통합작업’에서 사업그룹별, 공장별, 사업 및 제품별로 입체적인 검토를 했다. 공장을 특화 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이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산전 CU내의 일곱 개 공장의 <생산거점 전략>의 검토는 에이플랜에서 중요한 서브 프로젝트였다. 극비(極秘)로 분류하여 다루었다. 

 

공장의 특화를 위해 헤쳐 모여 이전을 할 경우 이동인원과 비용, 이전 효과를 산출했다. 이 과정에서 보안 유지는 필수적이었다. 생산 현장에서 노조를 중심으로 동요가 일어나기 십상인데다 이로 인한 생산성 저하를 염려했다.

 

에이플랜 팀에서는 공장입지 전략인 ’소재지 전략‘을 암호명처럼 내부적으로 ’소세지 전략‘이라고 불렀다.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의 애로와 역경을 패러디한 기발난 표현이었다.

 

 

 

‘중복 사업의 통합작업’은 대 내외적으로 어떤 파장이 일지 모르는 미묘한 사안이기도 했다. 옵션들이 트레이드 오프 관계였다. 중복사업에서 통합 방식의 선택은 시간 축에 따라 결과가 다를 뿐 아니라 사업의 장래와 직결되었다.

 

대상인 7개 사업은 지난 3개월 동안 사업부장을 비롯하여 영업, 공장, 연구소의 핵심 인력들을 모아 계층별, 부문별 워크샵은 계속되었다. 회의록 파일이 두 권이었다. ‘중복 사업의 통합작업’은 한마디로 컨센서스를 모으는 작업이었다.

 

 

실무자들끼리는 못하는 말이 없었다. 밑에서는 통합으로 가는 길이 뻔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회의록으로 남기는 건 어느 선이었다. 실무자들의 한계는 명백했다.

차 상위자가 그려준 범위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아이디어를 제안할 때 눈치도 살폈다. 윗사람에 대한 경계심이었다.

 

 

3 개월이 걸릴 워크샵도 따지고 보면 그렇게 시간을 투자해야할 일도 아니었다. 어른들의 단안이었다. 결국 사장들의 몫이었다. 다시 말해 사장들의 컨센서스와 결정사항을 하루라도 빨리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다.

향후 에이플랜이 검토할 <네고 플랜( Negotiation Plan )>은 이를 뒷받침하는 도상훈련이었다.

 

 

 

 

오늘도 해외 합작선과의 이해관계와 유 불리를 앞세우며 각사는 첨예하게 대립되었다. 합작선과의 관계 정리는 바로 에이플랜 프로젝트의 3사 통합 일정에 맞닿아 있다.

 

CU장이 표명한대로 히타치나 미쓰비시,후지전기 등 일본 합작선에 통합의 의지가 실린 신호는 이미 가 있다. 그러나 에이플랜에서 검토되는 내용과 산전CU의 기류에 대한 민감한 반응은 여러 군데서 감지되었다.

 

계전과 기전에서는 합작선의 일본인 부사장들이 상주한다. 각사에서 공식적으로 릴리스하는 자료 외에 많은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다. 심지어 기전의 부사장은 에이플랜 팀 멤버를 수시로 불러냈다.

기전 출신의 에이플랜 멤버인 이희양이나 최공범을 식사에 초대를 하기도 했다. 에이플랜에서 돌아가는 정보를 들어보려는 시도였다.

 

합작선의 부사장을 만날 경우 나에게 사전보고를 하도록 특별히 환기시켰다. 그리고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선을 정해 주었다. 다녀와서 대화의 내용을 보고하도록 하고 나는 확인했다.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내용과 상치될 경우 각사의 사장이 곤경에 처할 수도 있다. 자칫 국제적인 상사분쟁으로 비화가 안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미쓰비시와 히타치는 그룹 내에서 산전만 파트너가 아니었다. 그룹 자매사 곳곳에서 수십 년 동안 기술 파트너십을 유지해왔다.

 

산전 통합작업으로 인해 일어나는 불상사가 다른 CU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 파장은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일이다. 나로서는 여전히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부분이었다.

 

 

 

 

 

토론과 언쟁과 논쟁이 뒤섞였다. 드디어 이희종 CU장이 나섰다.

 

“ 한마디만 할게요. 사람이란 본래 자기 보호의 본능이 있습니다. 체면에 관한 문제로도 생각할 것입니다. 자기 사업이 어떻게 될지 장래에 대한 불안도 있을 것입니다. 착잡한 심경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

 

CU장은 느긋한 표정이었다.

 

“ 당부를 하겠습니다. 변화에 대한 공포감을 먼저 버립시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이 변치 않는 진리입니다. 산전의 장래의 관점에서 대국적으로 생각해주기 바랍니다. 어떻든 무슨 말이든 말을 해야 합니다. ”

 

오늘 무슨 말이든 하라는 포괄적인 주문이었다.

 

오늘의 논점 하나하나가 논의의 대상이었다. 변죽만 울리는 논쟁일수록 요란했다. 논쟁이든 언쟁이든 어차피 이런 과정은 거쳐야할 관문이었다. 할 말은 해야 뒷말이 적었다.

 

CU장은 논쟁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공유와 커뮤니케이션을 과정을 오늘의 주요 테마로 보고 있음인가. 

 

 

“ 합작선에 대해 그룹의 종합적인 방침이 유동적인데 산전이 앞서 나갈 수 없지 않습니까. 우선 산전과 계전을 통합하고 기전은 당분간 현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

 

평소 같으면 이런 말에 CU장은 역정을 냈었다. 그러나 CU장은 넘어갔다.

 

 

당초에 예상했던 두 시간을 훌쩍 지났다. 앞으로 걸릴 시간을 예측을 할 수 없었다. 경영회의 참석자들도 시계를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다급해지는 건 나였다. 

 

어정쩡하게 중도에서 그치면 다시 소집해야 할 판이다. 따라서 복잡하게 연결된 에이플랜 프로젝트의 다른 일정들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프로젝트 책임자로서 난처한 대목이었다.

 

나는 콩밭에 가있었다. 내내 나는 조마조마 했다. 

 

 

 

 

“ 김 이사! ”

 

 

CU장이 갑자기 나를 부르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CU장의 큰 목소리에 토론은 잠시 중단되고 모두 CU장을 쳐다보았다.

 

 

“ 김 이사. '화촌'에 도시락 시키지. 사람 수대로... ”

 

 

“ .................. ”

 

 

“ 오늘 끝장을 보자구. 오후 약속은 미루어야겠어. 약속 날자를 다시 연락하겠다고 미스 최(비서)한테 알려줘. ” (34화 끝)

 

 

 

 

순서 표기 오류로 35화, 36화는 생략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