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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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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와 김장배추 농사 올핸 김장배추가 밭에 아직 그대로 있다. 해마다 김장무와 배추 농사를 빠뜨리지 않고 짓는건 재배 자체가 즐겁기도 하지만 나눠먹을 누군가가 있기때문이다. 해마다 김장철이면 읍내 노인복지회관에 기증을 해왔는데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로 복지관 식당이 폐쇄되어 우리밭에 무 배추가 갑자기 남아도는 것이다. 집사람이 신세를 지는 안마원에서 마침 김장을 한다기에 튼실한 놈들을 골라 몇 개 오늘 뽑아다 주었다. 코로나 시대에 갈 곳을 잃은 배추... 그나마 홀가분하다.
'우거지국'과 '시래기국' 스산한 날씨. 따끈할수록 시원한 배추우거지국과 무시래기국, 어느 쪽이 더 시원할까? 소줏잔깨나 축낸 다음날, '우거지상'으로 아침 밥상에서 찾아헤매던 우거지국이 그런 면에서 단연 한 수 위다. 귀촌한 뒤 배추잎 배추우거지와 무청시래기를 만들기도 했으나 번잡스러워 최근에 와서는 무청시래기만 만든다. 추억 삼아라면 모를가 구태여 우거지국을 찾을 일이 없다. 쉰 개나 되는 월동무를 땅에 묻는 바람에 무청시래기가 잔뜩 생겼다. 한가롭던 처마밑에 빨랫줄이 갑자기 붐비기 시작했다. 곧 무말랭이를 만들면 앞으로 무청시래기는 더 늘어날 것이다.
김장...요란하게 해야 하나? "배추 두어 포기 뽑아다줘요. 무, 쪽파도... 알타리도요." "소금도 좀 퍼다주고요." 집사람의 잇단 주문에 따라 채마밭 돌계단을 서너 번 오르내리며 부지런히 갖다 날랐다. 재빨리 소금 장독에서 왕소금도 덤뿍 퍼왔다. 알타리무 씻을 땐 소매 걷어붙이고 나도 한몫 거들었다. 하룻밤을 새고 오늘 아침에 탁자 위를 쳐다보니 자그마한 플라스틱 통 속에 이미 쏙 들어가버린 김장. 배추 김치와 알타라리무 총각김치, 두 통. 집사람과 나, 단 두 식구에 간단명료한 올해 우리집 김장 풍속도. --- '배추는 밭에 있겠다 먹을 만큼만... 그때그때. 조금씩.' - - - 큰소리 치는 뒷면에 든든한 '빽'이 있기에 가능한 일. 김장 김치, 묵은지 먹고 싶을 땐 언제든지 말하라는 돈독한 이웃사촌이 있다.
무시래기 추녀 아래 빨랫줄 걸대에 무청 시래기가 매달리기 시작했다. 밭에서 두어 개씩 대왕무를 뽑아올 때마다 통무를 잘라낸 시래기가 차츰 늘어난다. 날씨가 영하로 더 떨어지기 전에 무를 뽑아다 통무는 저장하고 무청은 말려야 한다. 이웃 친구이던 호박고지가 올핸 없어 무청 시래기가 외롭다. 곧 풍성해 질 것이다.
백화산의 서쪽 집에서 바라다보면 정남향의 백화산. 가을이 이제 막을 내린 백화산 산행은 휑하니 허전하였다. 평소 중턱 태을암까지 자동차로 올랐던 까끌막 등산로가 오늘 새삼 걸어올라가려니 숨찼다. 애시당초 봉수대가 있는 꼭대기까지 오르려고 한 건 아니다. 오늘 자동차 정기검사를 받았다. 검사장이 마침 백화산 서쪽 능선 등산로 초입에 있었다. 검사가 끝나길 기다려 마음먹고 짬을 낸 것이다. 읍내 나들이땐 늘상 오가는 길목인데 백화산을 지나치기 일쑤여서 한 해가 가기 전에 그나마 발길을 옮겨보았다.
김장은 언제 하나? 배추와 김장무 배추밭에 배추는 결구가 되어 속알이 들어차고 대왕무는 장독처럼 되었다. 자랄대로 자라고 클대로 컸다. 날씨가 영하로 곤두박질을 치자 온동네 집집마다 알게 모르게 김장 준비에 잰걸음들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경운기를 동원해 도내나루 바닷물을 물통에다 퍼와서 큰 고무다라에 배추를 절였던 모습은 지난 옛이야기로 서서히 사라지는듯. 우리집은 김장을 안하는 걸로 방침을 굳혔다. "밭에 무, 배추 있겠다 그때그때 조금씩 담가 먹으면 되는 거지..." 하며 집사람이 일찌감치 선언을 했다. "애들이 가져다 먹냐?... 달랑 두 식구에... 괜시리 번잡키만 하구... " 허긴 그렇기도 하다.
11월 30일, 해질 무렵
가지와 풋고추 "우리가 한햇동안 먹는 상춧값 채솟값만 얼마나 될까?!" 버릇처럼 매양 하는 문답을 오늘도 집사람과 나눴다. 봄 이후 여름을 지나 지금까지 푸성귀를 마트나 시장에서 사다먹은 적이 없다. 텃밭 채마밭이 있다는 장점이자 내가 직접 가꾼다는 이점이다. 입동, 소설을 지나 김장철. 배추 김장무 대파야 지금이 제철이다. 그러나 가지와 풋고추. 무서리 된서리 노지 칼서리에 모양새는 다소 흐트러져도 꿋꿋한 기상이 고맙다. 휘어꼬부라진 가지 하나, 똥짤막해진 고추 한 개에서 신의와 성실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