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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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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도 거울이 있다 오늘도 걷기운동 외출 행장을 갖춘다. 나가기 전에 반드시 거치는 습관. 앞산 솔밭에 소나무 가지들이 흔들리는 추임새를 점검하는 일이다. 들판에 바람의 세기를 가늠한다. 핸드폰에 뜨는 일기예보는 믿을 게 못된다. 걷다 보면 들판에도 군데군데 거울이 있다. 교통반사경. 나를 비춰본다, 집에서 잘 안 보던 거울을.
앞뜰, 야콘 밭 너머로 보다 저물어가는 가을이 보인다. 벼 추수 콤바인 엔진 돌아가는 소리로 며칠 왁짜하던 앞뜰은 다시 조용해졌다. 잠깐 사이에 가을걷이가 끝났다. 우리밭에 야콘은 이파리가 아직 싱싱하다. 첫서리가 내리고 누릿누릿해져야 땅밑에 야콘을 캔다. 토란도 비대기를 거치며 한창 여물어 간다.
올려다보다, 내려다보다 가로림만의 남단, 후미진 도내리 갯마을 이곳에 어느날 외지인으로 들어와서 집을 짓고 정착한 지 17년이 되었다. 추석 명절이 가까워오면 동네 사람들은 마을 들머리에서 안마을까지 길 양쪽의 풀깎이 제초 작업을 했다. 예초기를 든 남정네가 지나가면 아낙네들은 뒤따라 가면서 빗자루로 쓸어 모았다. 수고한다며 반장은 박카스를 한 병씩 돌렸다. 명절 기분이 나기 시작했다. 추석 당일 날은 '어서 오누!' 하며 한 잔하러 빨리 오라는 독촉 전화가 빗발치듯 걸려왔다. 문 반장네 집이나 박 회장집... 아낙네들은 돌아앉아 한 점에 100원 고스톱을 쳤고 남정네들은 주거니 받거니 거나하게 술판이 벌어졌다. 반상회는 옛말. 4, 5년 전부터 풍속도가 확 달라졌다. 한적하기만 했던 산천이 이젠 의구하지도 않거니와 물도 옛물..
앞뜰, 들판을 걷다보면... 형제산 백화산 동으로 팔봉산, 서쪽은 이화산, 남쪽은 백화산, 북쪽엔 형제산이 있다. 벼가 익어간다. 이화산 팔봉산
저 앞뜰에는... 돌아온 백로
해질 무렵 도내수로 딱히 드러낼 일은 없어도 뭔가 하루종일 부산했다. 귀촌의 일상이 그러하고 특히 요즘 그렇다. 느지막한 시간에 읍내를 다녀와 차고에 차를 댈려고 보니 발 아래 들녘이 시야에 들어온다. 포강 위로 논도랑, 논 그리고 도내수로. 어느듯 저녁해가 뉘엿뉘엿 수로에 윤슬되어 어린다.
아침해를 바라보며 걷는다 오늘도 솔밭 위로 해가 뜬다. 도내 수로 수문 사이로 햇빛이 눈이 부신다. 아침 햇살을 온 몸으로 받으며 걷는 기분. 해뜰 무렵에 앞뜰을 걷는다.
안개냐? 먼지냐? 오늘도 걸었다 햇살 나면 금세 사라지는게 새벽 안개다. 언제쩍부터인가 한나절까지 걷힐 줄 모른다. 걷기운동을 아니할 수도 없고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개의치 않고 걷는다. 대책 없는 일일랑 아예 무시하는 편이 마음 편하다. 앞뜰을 돌아 한 시간가량 걸으면 대충 7천 보다. 4 키로 남짓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