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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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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 안에서 하는 일 얼룩이 강낭콩을 한 바케쓰 땄다. 봄에 뿌려 두었던 건데 지지대를 세워 울타리를 만들어 주긴 했으나 여름을 지나며 잊고 있었다. 이제 와서 보니 듬성듬성 그다지 작황이 좋지 않아 그냥 내버려 둘 가 하다가 거두기로 했던 것. 성가시긴 해도 일일이 따서 하우스에 가져와 풀어 놓았더니 적은 양이 아니다. 오다가다 짬 나는 대로 까면 된다. 가을 햇살에 비닐 하우스 안은 따뜻하다.
춘분, 모종아지매 올 상견례 태안에 귀촌해서 18년째 단골 모종가게. 50대 아주머니가 이젠 70인데도 원기왕성하다. 편하게 나는 모종 아지매라 부른다. 오늘도 "사진 찍으러 왔슈?" 하며 첫 인사다. 읍내 나갔다가 혹여나 들러 본 모종시장. 초 다듬이라 모종은 빈약했으나 마수걸이로 인사치레는 했다. 올 농사 시즌 오픈이다. 마침 오늘이 춘분. 하우스 안에는 열흘 전에 뿌려 막 돋아난 새싹 흑상추, 작년부터 넘어와 터줏대감노릇을 하는 월동 상추에다, 오늘 심은 꽃상추까지 3대가 모였다.
오이,토마토... 비닐 하우스 시험 재배 초봄에 모종을 심었던 멧밭 노지의 오이와 토마토는 이미 줄기가 말랐다. 오이는 껍질이 단단하게 노각이 되었고, 토마토는 잦은 비에 갈라져 뭉개 터졌다. 이젠 그루터기를 뽑아낸 자리를 김장 대왕무, 알타리무, 김장 배추 모종에게 양도하고 있다. 같은 시기에 비닐 하우스에 심어둔 오이와 알토마토가 한 그루씩 자라고 있다. 줄기가 뻗어나 꽃이 피고 열매가 열어 지금이 한창 때다. 언제가지 가나 하며 퇴빗장을 풀어 거름을 덤뿍 주었다. 찬이슬 내리고 무서리까지 어디 두고 보자. 오이, 토마토.
화실 머리 위 대나무 걸대를 따라 오이 줄기가 지나간다. 오이꽃이 핀다. 알 토마토가 열리고 있다. 온갖 농기구가 들어차 있는 비닐 하우스가 화실이다. 덥고 해서 한동안 가만 두었더니 잡초가 기어들었다. 잡초란 놈은 안끼는 곳이 없다. 환삼덩굴을 걷어냈다. 오늘인가 내일인가, 곧 처서. 아침 저녁으로 제법 소슬바람이 인다. 슬슬 물감과 붓을 챙길 때가 되었다. 화선지가 쌓여있다.
귀촌일기- 농부, 오늘 하루는? 거실의 창문 커튼을 걷는다. 마당 아래로 앞뜰이 펼쳐진다. 모내기를 앞둔 간사지, 도내수로가 길다랗게 보인다. 산하는 온통 초록 물결. 날로 푸르다. 까딱이는 느티나무 나뭇닢을 보며 바람기를 알고 처마끝에 낙수를 보고 빗소리를 듣는다. 오늘은 뭘 하지? 농부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심는다. 읍내 모종시장에서 모종을 사 오고 하우스 안에 내가 만든 모종을 밭에 내다 심어야 한다. 모든 게 때가 있다. 밭의 위치에 따라 심을 작물과 내 나름대로의 순서가 있다. 어제 사다둔 비트 모종과 대파 모종.
농부의 작업실
간월도, 간월암의 봄 5년만에 그림붓을 잡았다. 밭에서 일 하다 말고 들어와 붓을 드는 시간이 쉬는 시간이다. 비닐 하우스가 새삼 좋은 까닭. 몇년 전, 마침 복지관 한국화 교실에서 그렸던 '간월암의 가을' 그림이 있기에 옳지! 하며... '간월암의 봄'은 지금 이럴까?
화선지를 자르며 비가 내린다. 봄비는 아니오는듯 조용한게 특징이다. 오늘 봄비는 왠일로 요란하다 했더니 여기는 비닐 하우스 안. 하우스 지붕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작아도 튀면서 콩볶는 소리를 낸다. 빗소리가 좋다. 봄비가 좋다. 비야 내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