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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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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절'을 보내는 법 지금 방역대책은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다. 누군가 한마디에 움직이는 고무줄 통계. 이중 잣대 정치 방역에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정부가 나설수록 거꾸로 간다. 온갖 SNS 문자 서비스도 공해가 된지 오래다... 정치가 나대며 과학을 무너뜨리면 나라가 망한다. 나만 느끼는 소감이 아니다. 곳곳에 선배 후배 친구들 지인들과 통화를 해보면 열이면 열 사람 이런 말을 안하는 사람이 없다. 재난 지원금이니 하며 국민세금 나랏돈 풀 생각만 하는 북악산 발 여의도 바닥의 야바위 정치인들. 그동안 어떻게 모아온 곳간인데 끝없는 포퓨리즘에 답답하고 대한민국의 미래가 갑갑하다는 것이다. 답답갑갑한 이 시절을 현명하게 보내는 방법이 없을까. 오늘도 밭에 내려가 지난 여름의 설거지를 한다. 가을걷이 뒤끝에 나딩구는 마른 덤불..
귀촌일기- 미국에서 온 사진 넉장 30여 년 전, 직장의 후배가 며칠 전 돌연 블로그 내방에 나타났다. 1985년 쯤인가 기억이 가물한데 홀연히 미국으로 건너가서 대학 교수가 되었다. - - - 오늘 e메일로 옛사진을 보내왔다. 80년대 그 당시 회사에는 인포멀 그룹이 많았는데 나는 산악부 회장을 맡았고 후배는 총무였다. 1984년..
<이병주 문학관>에서 '그 친구'를 만나다 3박 4일 남도 기행에서 마지막으로 드른 곳은 <이병주 문학관>이었다. 우리나라 현대문학사의 거봉인 나림 이병주 선생의 문학세계와 남기신 저작의 향기를 새삼 더듬으려 간 것이 아니었다. 당신의 고향인 경남 하동군 북천면에 문학관이 섰다는 말을 들은 후 언젠가는 하며 마음속..
귀촌일기- 나는 운전수였다 두메에 구기질러 사는 나에게 별별 한양길도 다 있다. 그냥 넘어가려다 이실직고 하련다. 이번에 서울에 올라간 건 100푸로 운전수 역할이었다. 마누라의 발이 지네에 물린 여파가 나에게 미친 것이다. 두어군데 서울에서의 약속을 깰 수 없다는 단호함에 괭잇발 동댕이 치듯 내던지고 입..
귀촌일기- 북한산,보현봉,일선사 평창동에서 보현봉 아래 일선사까지 올랐다. 5년 만이다. 수 백번 오른 북한산이야 이 길로 만 오른 건 아니다. 시선이 머무는 곳 마다 발길이 닿는 데 마다 오늘따라 새롭다. 북한산도 좋고 팔봉산도 좋다. 산은 언제나 좋다.
귀촌일기- 대조동의 밤, '대추 먹다 배꼽 나오겠소' 대학 입시를 재수할 무렵인 1966년에, 나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대조동에 살았다. 불광동 버스종점과 녹번동 사이가 대조동으로 북한산이 있는 동쪽을 바라보면 곧 굴러떨어질 것만 같은 독바위가 다가오고 독박골을 따라 불광천,연시내가 갈래되어 흘렀다. 나무가 썩지말라고 시커면 ..
김상현 교수를 애도함,45년 전 다솔사 시절을 회상하다 오늘 아침에 텔리비전 화면 밑으로 지나가는 자막을 보고 놀랐다. '김상현 동국대 사학과 교수 별세' 2011년 8월12일 이 블로그에 올렸던 내 글이 생각났다. '다솔사일기'라는 소제목으로 7회에 걸쳐 다솔사 이야기를 썼는데 마지막 분을 다시 전재하면서 김상현교수의 별세를 애도합니다. -..
귀촌일기- 화력발전소, 세월에 부대끼면 자연이 된다 시골 방앗간을 지나노라면 통 통 통 발동기 소리에 맞춰 올라가던 도나츠같은 연기가 기억에 새롭다. 가을걷이가 끝나는 입동 무렵 해거름 때 든든히 지피는 토담집 굴뚝의 장작 군불 연기로 우리는 고향을 말한다. 연기가 고향이자 향수다. 연기가 사라졌다. 얼마 전 서울 갔다가 오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