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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갯속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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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름, 복조리, 버갯속영감 정월대보름이면 담부랑 너머로 복조리를 던져 놓고 나중에 복조리 값을 받아가던 애교있는 복조리 장수도 있었다. 30년 전까지 그 많던 복조리 장수들은 어딜 갔나. 거실 입구 우리집 복조리. 18년 전이다. 귀촌 직후 버갯속영감님이 만들어 주신 복조리. 천 원짜리 새 지폐 두 장을 담아 걸어 놓는 위치까지 정해 손수 달아주셨다. 버갯속영감님은 28년 우리마을 이장을 지낸 분. 16년 나이 차는 아랑곳 않고 친구처럼 막내 동생처럼 대해 주셨다. 귀촌 정착기록으로 "버갯속영감 교유기"를 2007년 출간하였다.
굳이 마늘을 심는 이유 올해도 버갯속영감님 댁에서 육쪽 마늘 종자를 얻어왔다. 도내나루터 쪽 바닷가 수천 평 밭에 심고 남은 종자다. 아예 우리집에 주려고 일부러 남겨놓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얼마 전 양파 심은 동밭 가생이에 보식을 하듯이 삥 둘러 심었다. 해마다 빠뜨리지 않고 우리 밭뙈기에 굳이 심어온 이유는, 알 마늘을 캐기 전, 일찌감치 초봄에 풋대마늘을 먹기 위해서다. 풋풋한 풋마늘 향내가 봄철 밥상에서 깔끄러운 입맛을 잡아주기 때문이다. 귀촌의 참 맛이기도 하다. 봄을 기다린다.
열무 김치와 햇고구마 음식에는 서로 어울리는 안성마춤 구색이 있다. 삶은 고구마와 새콤하게 숙성된 김치가 그렇다. 이른 아침에 안마을 버갯속영감님 댁 김 계장이 햇고구마와 열무김치를 가져왔다. 올해는 고구마 알이 제대로 들었는지 간 보기, 맛배기로 캐본 것이란다. 잔털이 보송보송한 걸로 보아 땅 속에서 가을 햇살의 지열을 받으며 비대기를 거쳐야 태깔이 날 게다. 고구마 철. 본격적으로 햇고구마를 캐려면 두어 주일 더 기다려야 한다.
햅쌀 안마을 버갯속영감님 댁에서 보내온 햅쌀 한 부대... 그리고 참깨 한 봉지와 고춧가루와 함께. 이른 아침에 아들 김 계장이 직접 들쳐 메고 왔다. 며칠 전에 뙤약볕 아래서 내외가 함께 손발을 맞춰 열심히 추수하는 걸 걷기운동 길에 만난 적이 있다. 콤바인으로 거둔 조생종 물벼를 말려서 정미 기계를 돌려 방아를 찧는 등 바쁜 걸음을 쳤을 것이다. 해마다 잊지 않고 명절에 맞춰 보내오는 정성이 고맙다. 긴 장마에 알곡이 여물지 않는데다 시절이 너무 빨라 한가위에 햅쌀 구경을 못할 줄 알았다.
고추 따는 부부 우리집 바로 뒤는 버갯속영감님 댁 고추밭이다. 개펄 바다에 당섬을 지나 구도항이 보인다. 두어 물 째 고추를 따고 있다. 풍성하다. 유달리 오랜 장마에 올해 고춧금이 좋은 지 어떤 지 물어보고 싶었으나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귀찮게 해서는 안되겠기에 참았다.
부자 " 이 집, 부자네요! " 올해도 잊지 않고 버갯속영감님댁에서 육쪽마늘과 양파를 가져왔다. 무거운 마늘과 양파 망을 거실 창가 데크 바닥에 내려놓으며 하는 말. 밭에서 내가 캐다 놓은 우리집 양파 무더기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부자라는 말이 왠지 듣기 좋다.
강풍에 고목 소나무가 쓰러졌다 이른 아침에 대문간을 나가보니 간밤의 강풍에 고목 소나무가 쓰러져 있었다. 통행이 없는 야밤이어서 천만다행이었다. 3년 전에 조경을 했던 정원수 소나무 두 그루가 강 전정 탓인지 소나무 재선충 감염인지, 뭔 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시름시름 말라 죽어버렸다. 농기계 장비가 다니는 농로인데다 이웃집 불편을 염려했는데 버갯속 영감님댁 김 계장이 득달같이 달려와 화통하게 단숨에 치워주었다. 그동안 둥치의 껍질이 벗겨지고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채 을씨년스러웠다. 나 혼자 힘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베지 않고 그대로 두었는데 이번 초대형 태풍급 강풍에 쓰러진 것. 남은 한 그루도 마저 베어냈다. 앓던 이 뽑아낸 만큼 시원하게 장마철에 불어닥친 강풍이 숙제를 해결해준 셈이다.
오늘은 용쓴 날, 밭갈이 하는 날 열흘 전 쯤 안마을 버갯속 영감님댁 김 계장에게 밭갈이를 부탁했는데 오늘이 그 날이다. 하룻 만에 비닐 멀칭까지 해치웠다. 후련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도와주는 이웃의 정이 고맙고 역시 돈이 사람을 편하게 해준 하루였다. 작년까지는 이웃 박 회장에게 부탁을 했었다. 트랙터로 밭갈이를 해주고 가면 내가 며칠을 두고 쉬엄쉬엄 비닐 멀칭을 했어야 했다. 중간에 봄비라도 내리면 흙이 단단하게 굳어져 삽질이 힘들어 낭패나기 일쑤였다. 김 계장이 새벽 여섯 시에 읍내 인력회사 에 나가 인부 2명을 '힘들게 겨우 모셔왔다'. 아침 식사도 같이 했다. 우리집에 도착한 시간이 7시 반. 일과는 오후 다섯 시까지다. 인력시장의 규약이 그런지 총알같이 하던 일 멈추고 땡이다. 읍내까지 김 계장이 다시 모셔다 주었다. 농번..